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26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차량에 올라 열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사마저 '이념론'을 부각했습니다. 최근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을 비롯한 시민단체, 언론 등을 반공 프레임에 가두며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 "북한·추종세력, 가짜 평화 속임수"
윤 대통령은 26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행사'에서 "우리 국민은 북한의 공산세력, 그 추종세력의 가짜 평화 속임수에 결코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종전 선언을 추진했던 문재인정부와 여당이었던 민주당을 비난하는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국군의날은 국군장병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북한뿐만 아니라 국내 진영을 가르는 기념사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반국가세력의 존재가 국가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다. 이것이 전체주의 세력의 생존 방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과 확신,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으는 연대의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윤 대통령 발언에 '철 지난 반공주의를 꺼내들었다'며 정치권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민주당은 권칠승 수석대변인 명의의 브리핑에서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는 극우 유튜버의 독백이나 다름없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민주·인권·진보로 위장해 패륜 공작을 벌이는 공산세력은 누구인가"라며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 시민사회와 언론, 국민을 그렇게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 채널에 심취해 유신독재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의심스럽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 2019년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철 지난 반공 프레임…"심각한 자기부정"
윤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서 이념전쟁을 벌인 것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지난 6월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 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맹비난했습니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을 또 비난한 겁니다. 현직 대통령이 국내 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거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파장을 낳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유엔사 직위자 초청 간담회에서는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반공주의가 국정 운영 전면에 등장한 꼴입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검찰총장을 지낸 윤 대통령의 이력을 생각할 때 반국가세력 발언은 심각한 자기부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자유총연맹 발언이 있은 뒤 "극우·망언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찰총장이던 자신의 과거를 잊은 심각한 자기부정"이라며 "지금이 냉전 시대도 아닌데 대체 무슨 말이냐"이라고 직격했습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