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그룹 지배회사 한화가 몸집을 줄이고 현금을 모으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정밀기계를 받지 않기로 해 5000억여원 주식 취득금을 아낍니다. 작년 방산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넘겨 이미 8000억여원을 확보해둔 상태입니다. 게다가 반도체 전공정 사업도 정밀기계에 팔기로 해 유동성 전략이 부각됩니다.
3일 한화에 따르면 당초 방산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넘기고 대신 정밀기계를 받기로 했지만 수정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이사회는 정밀기계 주식취득 결정을 철회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한화는 “글로벌 경기 변화 등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급격한 경영환경 및 실적, 전망 등의 변동 및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주식매매계약을 철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본래 한화는 이차전지를 포함해 반도체 장비까지 전장비의 사업 일원화를 꾀했는데요. 이번 공시는 두 사업을 분리하기로 한 결정입니다. 여기엔 무역환경 변수가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는 최근 업황이 상반되며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으로 IRA 같은 정책 변수도 얽혀 있습니다. 일례로 이차전지 관련 IRA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팔 수 없는 독소조항도 있습니다. 한화는 정밀기계 취득을 처음 결정한 작년 7월29일 이후 이처럼 시장 환경이 변하자 거래종결일을 두차례 연기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예상됐던 정밀기계 주식 취득금 5250억원을 아낍니다. 같은날 이사회는 한화정밀기계에 반도체 전공정 사업을 양도하기로 했습니다. 이로 인해 양도가액 750억원까지 보태질 예정입니다. 지난해 12월29일 한화방산을 8520억여원에 처분(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한 것까지 포함하면 유동성이 넉넉해집니다. 대신 방산과 기계분 매출은 감소하게 됩니다.
한화는 미국에 대한 대규모 태양광 투자를 추진하고 있어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부채가 많은 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그룹 신용도가 하락한 데다 시중 금리 인상으로 금융조달 환경도 부정적입니다. 그룹 내 화학 사업 마진 감소로 영업수익성도 떨어진 터라 연결 모회사인 한화 역시 보수적인 재무전략이 요구됩니다.
한화오션의 경우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섰습니다.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오는 11월 중 약 2조원 자금을 조달할 계획입니다. 한화는 한화시스템 등 연결회사를 통해 증자 대금을 지출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 내 태양광 투자 등을 위해 5억달러 출자도 계획 중이라 투자부담이 큽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정밀기계 주식매매계약을 철회한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공시번복으로 인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습니다. 양사는 10월13일 기한 내 이의 신청해 위반 동기와 중과실 여부 등을 다툴 것으로 보입니다. 추후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되면 부과벌점이 10점을 넘길 경우 지정일 당일 1일간 매매거래가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