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년…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1년) 1년째 1심 결과조차 안 나와
검찰, 김광호 서울청장 기소 여부 9개월째 미정
지자체·경찰, 서로 책임 떠넘기기 급급
유가족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어”

입력 : 2023-10-29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유연석 기자] 서울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159명의 목숨이 사그라진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겨울·봄·여름 그리고 다시 가을, 계절이 네 번이나 지났지만 유가족들이 그토록 바라는 ‘책임자 처벌’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지난 1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두 달간의 수사 끝에 안전조치 소홀로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가 인정된다며 참사 발생의 책임이 있는 피의자 23명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났지만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피의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넘긴 피의자 중 가장 ‘윗선’인 김광호 서울청장에 대해 검찰은 9개월째 기소 여부도 못 정한 상황입니다. 검찰이 ‘최고 윗선’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됩니다. 
 
말단으로 갈수록 빠른 수사
 
현재 진행 중인 이태원 참사 관련 재판은 크게 △박희영 용산구청장(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핼러윈 보고서 삭제 혐의) △해밀톤 호텔 대표(불법 증축) 등입니다.
 
그런데 재판 속도가 느립니다. 검찰이 기소한 용산구청 관계자 4명, 용산경찰서 관계자 5명, 경찰 정보라인 3명 등의 재판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진행 중입니다. 재판이 장기화하는 사이 박 구청장과 이 서장 등 6명은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속도가 그나마 빠른 건 해밀톤 호텔 대표 재판입니다. 참사 당시 호텔의 불법 증축물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검찰은 지난달 호텔 대표에게 징역 1년을, 인근 주점 임차인과 라운지바 대표에게 각각 징역 8개월을 구형했습니다. 선고는 오는 11월29일입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축제 중에 159명이나 목숨을 잃는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는데, 지자체나 공권력보다 민간이 먼저 처벌을 받고 책임을 지는 상황이 된 겁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윗선’으로 못 향하는 검찰 칼날
 
수사가 ‘윗선’을 향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은 ‘최소한의 책임자’로, 이른바 ‘중간 실무자’ 또는 ‘말단’에 불과합니다. 검찰은 경찰 피의자 중 가장 ‘윗선’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9개월째 기소 여부도 정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관내 치안·경비 총책임자인 김 청장은 참사 발생 전 ‘핼러윈 축제 관련 보고’를 수 차례 받아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하고도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습니다.
 
김 청장을 수사하는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이 지난 4월 기소하려 했지만, 대검찰청이 보완수사 지시를 내리면서 제동이 걸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검찰이 불기소로 수사를 종결하거나 다른 피고인들의 과실치사상 혐의가 입증되는지를 지켜본 뒤 기소 여부를 정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유가족 측은 검찰이 대통령 눈치를 보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참여연대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경찰과 국가의 책임을 덮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면 검찰은 망설이지 말고 즉각 김광호 청장에 대한 기소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도 정부는 보란 듯이 26일 경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검찰 수사대상 신분의 김 청장을 유임했습니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청장이)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인데 불기소 처분하라는 시그널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책임 떠넘기기’에 유가족 막막
 
지지부진한 재판·수사와 함께 유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 중 누구 하나 ‘내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모두 ‘남 탓’으로 떠넘기며 혐의를 부인합니다. 
 
용산구는 인파 관리의 책임 주체로 경찰을 지목했습니다. 박희영 구청장은 “인파 관리나 군중의 통제는 경찰의 업무”라며 “(우리는 권한이 없는데) 대비하는 것이 오히려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검찰 진술에서 “나는 신이 아니라서 예측할 수 없었다”며 “사람들도 사고 날 줄 몰라서 온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책임을 지자체로 떠넘기려 했습니다. 지난 23일 재판에서 검찰은 박성민 전 서울청 정보부장이 “적극적인 수사 드라이브로 주최 측과 자치단체의 책임이 부각되도록 조치 필요”라는 문자를 보냈다며 경찰이 책임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던 증거를 내밀기도 했습니다.
 
이날 공판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사 희생자 고 유연주씨의 아버지 유형우씨는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고 1주기가 돼가도 누구 한 명 ‘내 실수다’, ‘내 잘못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미래의 경찰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회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이태원 참사 당시 인파우려 보고서와 관련한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정보경찰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연석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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