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향정신성 의약품(마약류 의약품)을 자신에게 '셀프 처방'하는 의료진은 해마다 약 8000명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재가 미흡하다 보니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한편 의사 자신이나 그 가족에 대한 마약류 처방을 금지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의료용 마약류를 자신에게 직접 처방한 의사는 1만5505명입니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 7795명 △2021년 7651명 △2022년 8237 △2023년(1~5월)534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식약처 조사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매년 평균 약 8000명의 의사가 마약류를 셀프 처방한 셈입니다.
현행법상 의사는 의료 목적으로 자신에게 약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 마약류 취급 의료업자가 아니면 의료 목적으로 마약 또는 향정신성 의약품 투약·제공을 금지하지만 의사가 자신에게 스스로 마약류를 처방하는 것에 대한 제재는 없습니다.
'의사 자가처방 금지' 개정안 계류 중
해외에서는 마약류 자가 처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가가 많습니다. 미국 일부 주에서 응급상황을 제외하고 자기 처방을 제재하고, 캐나다에서는 의사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마약류 처방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실제 국회에는 의사가 자신과 그 가족에게 마약 또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약·제공·처방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계류돼 있습니다.
이승우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마약 범죄에 의료인들의 방조나 연루가 많아지는 현 시국에 이같은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의료인이라도 타 의료인의 처방을 통해 본인이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처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과잉규제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선 "상세한 법규 필요…마약류 관련 의무 교육 선행돼야"
일각에선 의료진의 자가 처방이 곧 오·남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다른 방식의 제재를 단계적으로 시행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도 나옵니다.
변경식 법무법인 일로 변호사는 "실제 치료 목적으로 필요해 처방하거나 셀프 처방을 악용하는 의사가 아닌 경우까지 모두 가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응급 상황 시 처방 가능', '연간 처방 횟수 및 처방량 제한', '처방 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반드시 보고' 등 상세한 법규 정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변호사는 "일부 의사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로 인해 확대 해석된 부분도 있다"며 "의사 본인의 자가 처방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병원에 가서 같은 의사들끼리 처방해주며 똑같은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의료용 마약에 대한 의사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의무 교육 실행 등 단계적인 시도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8월30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검찰, 인천공항본부세관 마약 적발 합동수사 관련 브리핑에서 검찰 직원이 압수한 마약류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