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시기만 해도 외부 활동이 풀리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다 보니 오프라인 유통 업계의 어려움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사에 있어 쇄신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오프라인 유통 업계의 불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업계 맏형 격인 신세계그룹을 비롯, 현대백화점그룹 등은 올 가을 인사를 통해 핵심 계열사 대표를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인적 쇄신 작업에 나섰는데요.
가장 먼저 칼을 뽑은 업체는 신세계였습니다. 지난 9월 신세계는 대표이사의 약 40%를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특히 지난 2019년 컨설턴트 출신 외부 인사로 최초 이마트 수장에 오른 강희석 대표의 거취가 주목됐는데, 강 대표 역시 칼바람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래 오는 2026년 3월까지 임기가 예정됐지만 최근 거듭된 부진한 실적이 강 대표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죠.
이후 이달 초 현대백화점그룹도 그룹 내 핵심인 현대백화점을 비롯, 현대홈쇼핑, 현대L&C 등 주요 계열사 대표를 대거 교체했는데요. 사실 신세계는 대규모 인사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현대의 경우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유통업계에서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현대백화점그룹은 웬만한 시장 변화에도 인사만큼은 공격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던 까닭입니다. 그만큼 이번 인사에는 최근 악화하는 유통 업황과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의식이 그대로 반영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유통 '빅 3' 그룹 중 인사를 남겨놓은 곳은 롯데그룹뿐입니다. 이달 말에서 내달 초로 예정된 롯데 인사 역시 신세계나 현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계 순위 하락,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 재무 부담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대대적 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죠.
결국 오프라인 업체들의 연쇄적으로 인적 쇄신의 칼을 뺀 건 유통 산업의 패러다임이 이커머스로 빠르게 기울고 있어서입니다.
유통 산업은 의식주의 주요 축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간 업황의 부침이 크지 않았습니다. 다이내믹한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꾸준한 수요층을 토대로 한 안정적인 내수 산업으로 간주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3~4년간 비대면 소비의 일상화가 이뤄지면서 오프라인 업체들은 그간 내세웠던 주특기를 버리고 반강제적으로 미래 신성장 동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요.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기업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이 같은 흐름을 기민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의사 결정에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현재 경쟁에서 밀리면 완전히 주도권을 내줄 수 있는 시장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유통 빅 3의 이 같은 인사 단행은 현시점에서 나름 맞는 결단으로 보입니다. 다만 기존의 익숙한 오프라인 경험을 뒤로하고 온라인 DNA를 그룹 내 얼마나 빠르게, 또 효율적으로 이식하느냐가 관건이 될 텐데요.
"과거는 다 잊고, 윗선부터 온라인 바다에 빠져야 한다"라는 최근 한 유통 분야 전문가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내년 가을에는 오프라인 유통가의 쇄신 칼바람 소식이 조금은 줄어들길 바라봅니다.
김충범 산업2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