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데이비드 3형제' 중 한중만 불발…함의는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미일 중심 '가치외교'…노태우정부 이전 '냉전외교'

입력 : 2023-11-24 오전 6:00: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서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중국 외교부 제공] (사진=연합뉴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중국 정부가 '앞으로 한국과는 협력보다는 위기관리 측면이 더 높다'고 한국 정부에 얘기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불발되는 과정을 보면서, 9월 말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로부터 들었던 이 말을 계속 복기하게 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한중정상회담에 대해 막판까지도 "논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최종 무산되자 "한중간에 시급한 현안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임박한 상황이었고, 부산 엑스포 유치에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첨단반도체 등에 대한 공급망을 비롯한 한중 무역 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중국이 거부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3일간이나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도, 정상회담 대신 우연한 '3분 환담'으로 끝내버린 겁니다. 시 주석이 미국과는 4시간, 일본과는 65분 만났고, 심지어 브루나이·피지와도 정상회담을 한 것과 비교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1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중과 중일이 각각 3시간, 45분 정상회담을 했는데, 한중 정상회담은 불과 25분이었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만났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거기에 3분이 추가됐을 뿐입니다. 중국이 경제에서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고, 안보에서 북한의 명실상부한 '최대 후견국'이라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중국 견제를 분명히 한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선언' 3국 중 한국만 배제한 셈입니다. 큰형(미국), 둘째 형(일본)과 충분히 얘기 나눴으니, 막내와는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요?
 
미국은 중국과 갈등하면서도 계속 고위급에서 대화했습니다. 외교 사령탑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경제 사령탑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 특사에 이어 대중 수출 통제 담당자인 지나 러몬드 상무 장관도 베이징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그저 미국의 '푸들'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최초 창안하고, 한미일 (준)동맹에 적극 나서는 한편으로는 이미 올해 초 중국과 외무·국방 장관(2+2) 회담을 하고 군사 당국 간 핫라인까지 개설했습니다. <경향신문>은 20일 "일본은 이번 중·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경제계, 학계 등 전방위적으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습니다.
 
한중은 물론 한미 정상회담도 안 했다
 
역시 같은 장소에 있었음에도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짧기는 했지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는 별도로 회담했습니다. 10분 안팎에 불과한 포토타임용 한미일 회동은 있었으나, 한미 정상회담은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는 이번에도 만났습니다. 올해만 7번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기시다 총리와 다 얘기했으니, 이미 미국에는 너무나 열심인 윤 대통령과는 만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니냐고 한다면, 지나친 비판일까요? 한국만의 전략적 자율성이 없으니, 세계의 G2인 미국과 중국에 변수로서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 아닌가요?
 
현 정부가 집권 초부터 '가치외교'를 선언하면서 중국과 각을 세우고 미국과 일본에 편향하자, "한국만 '돌격 앞으로!' 하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미국과 일본은 어디 가고 우리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지금 딱 그런 형국이 돼가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왼쪽)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7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태국 방콕에서 만나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중일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대만 문제에 대해 양국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도록 다양한 채널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사진=뉴시스)

"미·일은 어디로 가고 우리만 남게 될 것" 
 
지난 19일 자 '텔레그래프' 인터뷰처럼 윤 대통령은 여전히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거침없이 헤집습니다. 미국 외교·안보 분야의 구루라는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의 말처럼 시진핑 주석은 "통일을 중국의 미래와 자신의 유산의 핵심"으로 봅니다. 양안 문제는 중국의 역대 최고지도자 모두가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 이익'으로 상정해온 사안입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곧바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만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의 내정"이라고 발끈했습니다.
 
최근 미중 관계 개선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6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이 유지될 것이며,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공식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 내용은 1992년 한중수교의 전제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한국 정부는 대만해협의 평화·안정과 남중국해에서의 규칙에 기반한 해양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 지 충분히 예상된다는 점에서, 충격을 완화하는 조치나 발언이 같이 취해져야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 정부는 그런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한미일 (준)동맹'을 강조하지만, 미국은 내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외교 정책을 가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양보가 그 전제였으나, 한국법원은 강제동원 배상금 공탁과 이의신청 12건을 전부 기각했습니다.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진행된다면, 일본은 어떻게 나올까요?
 
이대로면 당장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 차원의 어떤 대응도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중러를 통한 북한 억제도 언감생심입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도 한 표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중국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정부 전략가들도 '가치외교' 문제 모를 리 없다
 
노태우정부가 30여 년 전 북한의 배후국이자 최대 후견국인 중국, 소련과 수교한 것은 북한을 압박해 동북아 냉전 분위기를 바꾸고, 북한과 미국, 일본 수교까지 끌어내려는 심모원려였습니다. 윤석열정부의 미일중심 ‘가치외교’는 한국 외교를 노태우 정부 이전의 냉전외교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가'들은 저간의 상황을 모르고 이렇게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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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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