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김성은 기자]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에 계묘년 부동산 시장은 상승동력을 잃고 기나긴 조정장에 돌입했습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겠다며 연초부터 규제완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시장 상황은 정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 위축에 건설업계는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여기에 ‘철근누락’으로 대표되는 아파트 안전 문제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업계 전체가 잔뜩 위축됐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① 고금리에 매매·분양 찬바람
커진 이자부담에 주택매매시장은 지난 2년여 동안의 상승장을 끝내고 차갑게 식었습니다. 2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 26일 기준 1792건을 기록, 10월 거래량인 2311건보다 22.5% 감소했습니다. 지난 1월의 1412건 이후 최저치입니다.
분양시장 역시 침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악성 물량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224가구를 기록하면서 2년8개월 만에 1만 가구를 돌파했습니다.
주택·매매 시장에 부는 찬바람은 내년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 돼야 잦아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② 서민 울린 전세사기
주택매매시장이 위축되자 매도를 포기하고 전세물량으로 전환하는 물건들이 증가하고 전세 매물 적체와 가격하락 사이클을 겪으며 깡통전세 물량이 넘쳐났고, 이른바 전세사기꾼들이 활약하기 좋은 환경도 조성됐습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0월 4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건축왕 남모씨 등 공모자 전원의 범죄단체 조직죄 확대 및 은닉재산 몰수, 추징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정부도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부부합산 연소득 1억3000만원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연 1~2%대 저금리로 전세보증금 대환대출을 받게하고, 대출 가능한 소득 기준이 기존(연 7000만원)보다 2배 가까이 늘리는 등 요건을 완화하며 피해자 구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③ '철근 누락' 아파트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에서 무량판 시공 아파트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되자 시공사인 GS건설은 국토부 장관 직권으로 토목건축공사업 등에서 영업정지 8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졌습니다. 또 엘피아(LH+마피아)로 불리는 LH 전관 카르텔 혁신도 이어졌습니다.
경기 오산시 청학동 오산세교2 A6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된 모습. (사진=뉴시스)
철근 이슈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에는 대우건설 자회사인 대우에스티가 시공한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기둥에 세로로 들어가는 주철근을 가로로 묶는 띠철근 오시공이 발견됐습니다.
④ 부동산 규제 완화 바람
정부는 연초 ‘1·3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완화 시동을 걸었습니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다주택차 취득세 중과, 양도소득세 중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등 세금 규제를 풀었습니다. 분양가 상한 지역 전매 제한도 3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 본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여기에 실거주 의무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규제도 손볼 것을 예고했습니다. 이 같은 정부의 부동산 시장 경착륙 방지 노력에도 가시적인 성과는 미흡합니다. 다만 정부는 내년에도 신임 박상우 국토부 장관 지휘 아래 ‘규제 완화’라는 명확한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보낸다는 방침입니다.
⑤ 중소 건설사 '줄도산' 위기
자금압박으로 건설사들이 줄도산 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면서 실제로 올해 부도 처리된 건설사는 총 19곳에 이르면서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건설업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달에는 시공능력평가 16위에 오른 태영건설이 부도설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대형건설사들 조차도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방증입니다. 태영건설은 28일부터 내년 초까지 PF 대출 만기를 줄줄이 앞두고 있어 실제 워크아웃을 신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⑥ 해외건설 수주 잇따른 낭보
올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해외건설 수주액은 292억5000만달러(37조8553억원)로 집계됐습니다. 전쟁과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외부 악재에도 4년 연속 해외수주 300억 달러(약 38조8320억원) 돌파가 유력합니다.
수주 낭보를 이끈 지역은 단연 중동입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 주동지역 수주 규모는 83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가량 증가했습니다. 현대건설은 사우디에서 6조5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단지 건설사업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⑦ 늙어가는 1기 신도시
기존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1기 신도시는 규제 완화를 내세우는 이번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1기 신도시에 주택 10만호 추가공급을 약속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8·16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에서는 내년 중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수립한다는 한 줄 설명만이 전부였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속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 침체와 늘어난 공사비로 분당을 제외하고는 사업성 확보도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⑧ 김포 서울 편입 논란
김포시의 서울 편입 이슈도 화제였습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내부 검토 결과 경기도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발언이 시발점이었습니다.
경기도 타 지역의 서울 편입 요구도 거셉니다. 구리, 하남, 고양, 과천, 광명, 부천 등 서울 접경 지역 경기도 시들도 편입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김포 서울 편입 논란은 내년 총선 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⑨ 거래막힌 둔촌주공
정부가 올초 ‘1·3 부동산 대책’을 부랴부랴 발표한 것은 지난해 11월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올림픽파크포레온 일반분양에서 대규모 미계약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1·3 대책에 전매제한과 실거주의무를 폐지하면서 둔촌주공 살리기에 나섰고 이에 둔촌주공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 일대 ‘우수 입지’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시장이 살아났습니다.
다만 분상제 주택 청약 당첨자들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연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대단지 아파트 입주자들 혼란이 가속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거주의무폐지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분양권을 되팔 순 있지만 실거주 의무 때문에 집을 팔 수도 전세를 놓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⑩ 속도내는 여의도 재건축
이번 달 대우건설이 여의도 1호 재건축 단지인 공작아파트를 수주하면서 지지부진하던 여의도 노후 아파트 단지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는 모습입니다. 서울시와의 마찰로 잠정 중단됐던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사업도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양아파트 단지. (사진=뉴시스)
다만 신탁 방식을 통한 도시정비사업 추진을 놓고 시공사는 물론 입주민 간 갈등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들이 까다로운 도시정비사업에서 발생 가능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무색한 상황입니다. 일반분양 수입의 최대 3%대 수수료 탓에 입주민들 간 갈등도 격화하고 있습니다.
송정은·김성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