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입니다.
윤 대통령이 국회가 의결한 특검 법안을 돌려보냈습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굳이 세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있을 것 같아서요.
이번 김건희 여사 특검은 총선용이라고 합니다. 인정합니다. 제가 봐도 그렇게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그러면 같은 논리로 최근 윤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언한 것은 총선용이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정부는 지난 연말 대주주 주식양도세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이건 주식양도세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금투세, 증권거래세 다 엮여 있어서 여야 합의로 일단 시행을 미룬 채 더 논의해야 했는데 전격적으로 시행령을 고쳐 풀었습니다. 거래세를 줄일 때도 그렇고, 세수가 감소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도 원칙적으로 반대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감히 대통령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으니 이번엔 기재부도 조용한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국회에선 금투세 폐지가 불가능합니다. 금투세 신설을 주장하는 거대 야당을 넘을 수 없으니까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규제 폐지는 어떻습니까? 1년 전 윤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윤 대통령의 공언은 금투세나 실거주의무 같은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서라도 여당에 표를 달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물론 직접 여당에 표를 달라고 한 건 아니니까 궁예의 '관심법'이 아니고선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순 없을 겁니다.
그래서 똑같은 논리로 이번 김건희 특검이 총선용이라는 지적도 옳지 않습니다. 특검법을 통과시킨 의도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관심법의 영역이니까요.
무엇이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아전인수, 견강부회하는 것이 정치인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 원칙과 기준이 있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요.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겠다며 어느 날 갑자기 공매도를 전격 금지할 만큼 우리 자본시장에 뿌리 깊게 박힌 적폐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대통령입니다. 투자자들도 크게 환호했습니다. 그렇다면 주가조작 세력의 일원으로 의심받는 김건희 여사에게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해서 억울함이 있다면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란 지론을 갖고 계신 분인데요.
김건희 특검이 성사됐다면 대통령의 가족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과, 자본시장의 불법세력을 엄단하겠단 의지를 증명할 좋은 기회이자,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아도 수십만 표는 더 몰릴 호재였는데 아쉽습니다. 말로만 하는 정치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치, 쓰고 보니 어디 먼데 공상과학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문구였군요.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