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PEC 세션 I 초청국과의 비공식 대화 및 업무 오찬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중 대리전'인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하면서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의 긴장이 한층 높아질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미중 관계와 연동되는 한중 관계도 악화일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러까지 밀착을 가속하면서 한반도 외교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대만 선거 하루 만에 '미중 충돌'…운신 폭 좁아진 '한국'
14일(현지시간) 미국은 라이칭더 당선인 승리 직후 스티븐 해들리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 등을 곧바로 파견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대표단 파견과 관련해 "미국이 대만과 비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난 수십 년간 전직 정부 관료, 전직 의원 등을 고위급 비공식 사절단으로 파견한 전례가 있다"면서 "미국과 대만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보도에서 "라이칭더로 인해 대만해협 갈등이 커진다고 해도 대만 문제 해결 주도권은 중국 본토에 있으며, 라이칭더가 한계선을 넘으면 중국 본토는 대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힘과 결단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만 총통 선거 하루 만에 미중 갈등이 드러난 셈입니다.
당장 중국은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가속할 전망입니다. 총통 취임식이 예정된 5월까지 군사훈련 등을 명분으로 대규모 무력시위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세금 감면 중단과 특정 제품 수입 중단 등의 경제적 제재도 결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과 중국이 역내 영향력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문제는 미중 관계 악화가 한중 관계로 연동된다는 점입니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중화민국(대만)이 계속해서 국제 민주주의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시사한 건데, 중국이 한국에 대만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중국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 문제라며 한중 관계의 가장 기본적이고 민감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윤석열정부가 미일과 함께 대만 해협 문제에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구도로 역내 질서가 재편될 경우 한국 외교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외교부는 지난 14일 "우리의 대만 관련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안정에 긴요하며, 역내 평화와 번영에도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 외무부가 공개한 사진에 세르게이 라브로프(왼쪽) 러시아 외무장관이 지난해 10월 18일 북한 평양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중러 초밀착 땐…한국, '대북 주도권' 상실
'북러 초밀착'도 한국 외교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15~17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북러는 경제협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양국 간 무기거래 정황이 드러나고, 기술 이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에서의 방문인 만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최 외무상의 경우 지난해 임명된 이후 첫 단독 해외 방문으로 러시아를 찾은 건데요. 혈맹인 중국보다 러시아를 먼저 방문한 것도 주목됩니다. 또 푸틴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의 방북 요청을 수락했던 만큼, 방북 시기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북중러가 초밀착에 나설 경우 한반도 내 한국의 주도권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오는 2월 이후로 예고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 추진 역시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큽니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하고 있는데, 한중 관계가 악화할 경우 중국이 이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