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실사구시 공약의 실종

입력 : 2024-02-14 오전 6:00:00
지난 연말에 '좋은 법(法) 만들기 운동본부'를 올해부터 가동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었습니다((오피니언)'좋은 법 개정 운동'에 나서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매니페스토 운동은 20년 세월을 거치면서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다행스럽습니다만, '공약운동'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좋은 법 만들기 운동'이 나와야 할 때가 된 것같아서 필자가 나서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에선 공약운동마저 실종된 듯합니다. 총선이 두 달 정도 남았는데요. 좋은 법 개정 운동에 본격 나서기 전 한마디 하고 지나가야 할 듯해 몇 자 더 적어봅니다.
 
옛날옛적에 학생 운동권에선 전위주의를 깨부수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1986년 하반기 건대 사태 이후 꾸준히 이어지다 1987년 들어서 더욱 강하게 일었었죠. 그 당시 대중주의로 전환하면서 나온 구호가 '대통령 직선제'였는데요. 온 국민을 '민주화=대통령 직선제'로 광범위하게 묶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87년 민주대항쟁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이후 저는 모든 일의 원리를 '대중을 중심으로! 실정에 맞게!'로 잡아왔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노동조합 위원장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모셨고, 본인 정치도 해오다보니 터득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나 자신의 이해관계 또는 대화 상대방의 요구를 중심에 놓으면 한도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결과물도 사람들로부터 욕먹기 딱 좋은 것들이 나온다는 것을요. 
 
선거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볼까요. '대중을 중심으로!'는 대중이 원하는 최대공약수 공약을 개발하는 것일 테고, '실정에 맞게!'는 후보 전술과 공약 발표에 관한 타이밍 즉 시중(時中)을 잘 맞춰야 한다는 뜻이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당이든 대중이 원하는 공약 컨텐츠는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같습니다. 스타트업 기업에 더 많이 더 쉽게 자금을 공급한다거나, 반려동물 공공의료보험을 한다거나, 신용평점이 낮은 저신용자에게 합법적 대출 창구 마련하는 등의 생활적 요구를 담아내는 좋은 법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어떤 당에도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든 정치인들이 발을 땅바닥에 딛고 서있지 않고 사변적이고 관념적 놀음만 하고 있다고 평가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60일이면 아직 세상이 몇 번 뒤집히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마음 급하게 그저 앉은자리에서 뚝딱뚝딱 두드려 맞출 생각을 하기보다는 현장에 가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하면 쉽게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 다음, 시쳇말로 '고급지고(?)' '톡톡 튀는' 정치제도 공약을 해야 대중적으로 먹힐 수 있지 않을까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예로 들면 비례대표는 늘리고, 지역구는 중대선거구제로 가고, 직접민주제 강화를 위한 입법청원 제도를 개정해 입법동의 기준을 10만명에서 3만명으로 낮추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잘만 한다면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진화도 시도해볼 만하겠지요. 
 
공약의 법제화가 최고 형태의 정치이고 그것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표를 결집시키는 것이 선거의 본질입니다. 어쨌든 자기 생각이 아니라 폭넓은 대중의 생각을 중심에 놓고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중을 중심으로… 경험칙상 생각할수록 오묘한 말입니다. 
 
정재호 전 국회의원·전 IBK기업은행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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