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12일 09:38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을 발표해 은행권이 본격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다만 고려사항과 기준이 복잡해 각 투자자에 대한 배상 수준이 정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율 배상에 따른 과징금 경감 등이 언급된 만큼 은행권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일각에서는 투자 실패에 따른 금융권 제재로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연합회은행 전경.(사진=은행연합회)
까다로운 배상비율...은행권 고심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투자자는 최대 손실액 전부를 배상 받는다. 기준안에 따라 차등을 둬 배상비율은 투자자마다 달라진다. 금감원에서는 손실 배상 규모는 대부분 20%에서 60% 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배상안에 따른 투자자 배상비율 산정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금감원이 발표한 배상비율조정 조건이 다양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배상비율은 크게 판매자별 요인과 투자자별 요인을 가산해 산출된다.
판매자별 요인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위반여부와 소비자 보호 체계가 부실하지는 않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투자자요인은 투자자의 금융취약계층 여부와 과거 ELS 투자경험, 금융상품 이해능력 등이 기준이 된다. 판매자별 요인으로만 23~50%의 배상비율이 결정된다. 여기에 투자자별 요인이 ±45%p 사이에서 가감된다. 이 외에도 일반화가 어려운 내용 등이 기타 조정요인이 ±10%p 적용된다.
세부적인 배상비율 조정안이 나온 만큼 은행권이 실질적으로 부담하게 될 배상규모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ELS 판매 주요 5개 은행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SC제일은행의 판매액 중 2월 말 기준 손실액은 1조543억원으로 확정 손실률은 평균 53.1%에 달한다. 만약 해당 금액의 20%만 배상한다 해도 은행별로 평균 약 2108억원을 배상하게 되며, 배상비율이 60%일 경우 6326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월별 만기 상환액이 예정돼 있는 만큼 배상 대상 손실액도 점차 늘어날 예정이다.
배상액도 문제지만 과징금도 은행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2020년 금융당국은 하나은행 파생결합펀드(DLF)를 불완전 판매했다고 보고 6개월간 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고 과태료 167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지난해 주요 은행 대부분이 호실적을 거뒀으나 당기순익 성장률이 2022년 대비 낮아진 상태다. 게다다 충당금 선제적 적립과 상생 금융에 따른 지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배상액과 과징금에 대한 부담마저 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 ELS 판매 주요 5개 은행의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은 ▲국민은행 4061억원 ▲신한은행 4686억원 ▲하나은행 7102억원 ▲농협은행 1753억원이다. 실적 공시 전인 SC제일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은 누적기준 3132억원이다.
만약 지난 2020년 하나은행에 부과된 수준의 과징금이 각 사에 부과된다면 국민은행은 지난 4분기 당기순이익의 4.1%, 신한은행 3.6%, 하나은행 2.4%, 농협은행 9.5% 수준에 달한다. SC제일은행은 3분기말 누적 순이익의 5.3% 수준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H지수 ELS배상이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고 배상안을 보는 각자의 입장도 달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제재 따른 시장 위축 '우려'
홍콩H지수 ELS 배상비율이 구체화되면서 당국의 제재에 따른 시장 위축도 우려되고 있다. 심지어 은행에서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등 투자자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우리금융지주(316140)를 제외한
KB금융(105560)지주,
신한지주(055550),
하나금융지주(086790)가 ELS판매를 중단하고 보수적인 상품 판매 기조를 보이고 있다.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닛케이ELS를 판매하고 있는 우리은행도 해당 상품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실제로 ELS발행액은 반 토막이 났다. 지난달 발행된 ELS 규모는 8851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2020억원 대비 60%나 감소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도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위험 금융상품을 은행에서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단일 상품 판매 여부가 아닌 시스템을 갖춰 고객 자산 관리에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은행권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고객의 선택권이 좁아지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졸속 처리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금감원이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을 제재 수준 결정 때 참작할 방침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판매사가 자율배상 조치를 하면 제재와 과징금 수위를 낮춘다는 뜻이다. 정부가 자율배상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판매사 입장에서는 자율배상할 경우 불완전 판매를 인정하는 것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은행업권 관계자는 “현재 DLF사태가 언급되며 비교되는 것처럼 이번 사안도 선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무리해서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