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국의 친환경 정책이 공급망 패권경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친환경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중국에 뺏긴 제조업 패권 부활을 노립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차세대 산업에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에 미국과 유럽도 갈수록 노골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명분. 유례없는 강도의 무역장벽과 공급망 단절이 갈수록 짙어지는 양상입니다. 그 속에 한국은 복합적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국이 탄소중립과 공급망 우위를 모두 확보할 반전 기회가 없는지, 뉴스토마토가 진단합니다. <편집자 주>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유럽과 미국의 친환경 정책이 무역분쟁으로 비화됐습니다. 양 진영 모두 맞불식으로 환경규제 강도를 높이며 중국을 억누르려 합니다. 한국도 같이 압박을 받는 처지입니다.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전략은 현지 투자 및 시장 다각화입니다. 하지만 고금리로 차입금이 불어나 전략적 한계도 노출됩니다. 이런 기업 부담을 줄이려면 결국 정부가 나서 외교적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했습니다. 다만 윤석열정부는 지극히 편향적인 외교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지투자 '무색', 믿었던 미국에 '발등'…유럽도 '탄소국경' 봉쇄
25일 국내 산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현대차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여전히 전기차 보조금을 못 받고 있습니다. 그나마 외교적 성과로 비쳐졌던 상업용차 보조금 지원도 현지에서 눈총을 사는 중입니다. 최근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리스 전기차 보조금이 새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필요 이상 지급된다는 논조입니다. 그러면서 현대차 사례를 대표적으로 꼬집었습니다. 삼성과 SK, LG 등 반도체나 이차전지 산업도 믿었던 미국에 발등을 찍힌 형편입니다. 미국 의도대로 현지 투자를 어렵게 결정했더니 중국 투자나 광물 사용 등을 문제 삼아 보조금 지급 여부가 불투명해졌습니다.
산업계 관계자는 “IRA 탓에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데도 보조금을 못 받아 억울한데, 이것도 모자라 거꾸로 나무라는 식이니 동맹국 표현이 무색하다”면서 “보조금 지급 차별은 국제법상 위배되지만, 환경 분야에 한해서는 허용하면서 보호주의 수단으로 변질된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CBAM) 시행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전환기간(시범도입)이 시작돼 오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됩니다. 유럽 내 수입되는 제품은 탄소배출량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합니다. 그에 따라 환경부담요금 등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원리입니다. 환경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지만, 규제 영향은 중국에 노골적으로 불리할 것이 관측됩니다. 수입품에 환경비용이 부과돼 유럽 역내 산업만 유리해진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덩달아 한국도 직간접적으로 유탄을 맞게 됐습니다.
혈맹이라더니, 실상은 '찬밥'…'외교적 실리' 절실
국내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 탄소량을 줄였음에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역내외 생산 차별을 두려는 의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우 공급망 전반에 대한 탄소중립 이행 여부를 따지기로 했습니다. 이에 중국과 공급망 사슬이 얽힌 한국도 난처해졌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현지 투자 등 시장 다각화 전략에 힘쓰지만 역부족입니다. 투자 부담이 쌓이면서 주요국들의 정책이 갑작스럽게 바뀔 변수에도 취약해졌습니다. 일례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유럽과의 연대는 다시 휘청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의 환경관세에 대응한 맞불식 무역관세마저 우려되는 실정입니다. 한국이 가입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도 트럼프 당선 시 자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라 파기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공급망 분열 위기를 해결할 외교적 역량을 주문했습니다. 한국은 IPEF 동맹 가입으로 중국과 멀어질 위험까지 감수했으나 IRA 등에선 어떤 우대국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현대차가 IRA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칩스법에 시달리는 와중에 일본이 외교 실리를 챙겨 상대적 박탈감도 커졌습니다. 당초 IRA 지원 대상은 FTA 체결국으로 한정될 전망이라 한국의 반사이익이 기대됐으나 비체결국가인 일본까지 포함되며 우리 기업들을 한숨 짓게 했습니다.
이해영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과거 무역법상 환경이나 노동 조항이 포함됐을 때는 좋은 의도로 비쳤으나 실체는 중국을 겨냥한 비관세 장벽이었다”며 “바이든 정권의 프렌드쇼어링은 트럼프 정권보다 더했다. 세계화 국면이 저물어가는 대신 다극화가 떠오르는데, 미국 외 여러 국가에 협력할 여지를 두는 일본처럼 우리도 철저하게 실리를 챙기는 국익 외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도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선 자국 생산과 동일하게 취급해 IRA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며 “한국은 미국과 FTA 및 군사동맹을 하고 있어 경제, 군사, 안보 측면에선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깝지만 그런 대우를 못 받는다. 외교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