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4·10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ICT(정보통신기술)·미디어 정책과 입법 분야에 제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부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무더기 법정 제재를 의결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 야권이 비정상적인 위원회 구조 개편과 '과잉 심의 차단'을 위한 제도적 해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입법 테두리 안에서의 여러 변화가 예상됩니다.
국회의사당 모습 (사진=뉴시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방심위'를 거론하며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라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현재의 방심위 위원 구성과 심의 현황을 둘러싼 논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공약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당은 먼저 방심위 심의 기능 개선을 위해 사회적 쟁점이 되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대사안에 대해 '시청자·이용자 참여 심의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현재 방심위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 무더기 '법정 제재'를 의결하고 있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함으로 관측됩니다. 여기에 민주당은 정치적 악용을 차단하기 위해 방송심의규정 중 '공정성' 부분을 전면 개정 또는 폐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방송심의규정 9조 공정성 조항은 그동안 방심위 심의에 있어 정치·편파 논란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바 있습니다.
또한 민주당은 방심위 심의 개시 요건도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요. 이는 '셀프 민원' 등 방심위의 안건 접수 과정에 대한 정치적 논란을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연합뉴스)
특히 민주당은 '불합리한 위원회 위원 구성 제도 전면 개편', '심의위원의 자격요건 법제화' 등 공약을 통해 현재의 비정상적인 방심위 위원 구성에 대한 제도 개편도 예고했습니다. 현재 방심위는 위원회 구성을 놓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해촉된 김유진 위원이 법원의 집행정지 신청 인용으로 복귀하면서 위원 구성 논란이 재점화 됐습니다.
관련법에 따르면 방심위는 9명의 위원 중 3명은 대통령, 3명은 국회의장(여권 2명·야권 1명), 3명은 국회 과방위(여권 1명·야권 2명) 추천으로 대통령이 위촉해 여야 6대 3의 구도로 구성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했던 김 위원과 옥시찬 위원의 해촉 건의안을 재가하고 이정옥·문재완 위원을 후임으로 위촉했는데요. 하지만 김 위원이 복귀하면서 대통령 몫이 4명(류희림 위원장·김유진·이정옥·문재완)으로 원칙보다 많아져 위법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 방심위는 "일시적으로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된 것"으로 "현재 구성된 방심위원의 직무 활동은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방심위는 복귀한 김 위원의 소위 배정을 두고도 갈등이 불거지는 등 여진이 계속되는 모습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공약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비정상적인 위원 구성도 다시금 정치권에서 도마에 오를 공산이 큽니다. 방통위는 앞서 상임위원 5인 중 대통령 추천 몫 2인(김홍일 위원장, 이상인 부위원장) 체제로 주요 안건을 의결해 논란이 불거진 바 있는데요. 이번 총선에서 양문석(경기 안산시갑)·김현(경기 안산시을) 등 야권 추천 방통위 전 상임위원들이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서 해당 논란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방통위가 지난달 밝힌 올해 업무계획 중 '분산된 미디어 규율체계를 정비하는 통합미디어법입법 추진', '대기업의 방송사의 소유제한과 지상파·유료방송 간 겸영규제 완화' 같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의 경우도 여야 간 갈등 및 야권의 제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추진 ICT 정책도 '빨간 불'
이번 총선에서 21대 야당이 압승하면서 정부 여당이 추진하던 ICT 부문 과제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입니다. 특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부분 고배를 마시면서 새롭게 과방위가 구성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정책 향배에 대한 예측은 어려운데요. 그럼에도 크고 작은 정책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먼저 가장 관심이 높은 것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입니다. 정부는 이달 초 단통법 폐지 등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현재 계류 중인 상태인데요. 단통법 폐지를 놓고 여야가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야당 내부에선 일부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번호이동 전환지원금 등 단통법 폐지 정책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것과 관련 야당이 '총선용 선심 정책'으로 의심하고 있어 시행령으로 먼저 시작한 전환지원금이 폐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AI 정책과 관련한 입법도 진통이 예상됩니다. '선 허용 후 규제' 내용을 골자로 한 AI 관련 법안도 1년 넘게 계류 중인데요.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에서 해당 조항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입안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유럽연합(EU)이 최초의 'AI 규제법'으로 불리는 AI법을 통과시킨 것도 변수입니다.
플랫폼 업계는 '플랫폼법' 재추진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야권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플랫폼법의 경우 정부안보다 규제 수위가 더욱 세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인데요.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해당 법안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