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한솔 기자]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증원 규모를 자율적으로 조정하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전국 의대는 내년도 의대 증원분의 50~100% 범위 내에서 신입생을 자율 모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 정부가 고집하던 '증원 2000명'을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명분으로 후퇴한 겁니다.  

 

정부는 이번 결정이 의료계와 대화 물꼬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책 후퇴의 선례를 또다시 남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후 특별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올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입니다. 따라서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모집인원을 결정해야 합니다.

 

 

한 총리는 "정부는 대학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해 의대생들을 적극 보호하고, 의대 교육이 정상화돼  의료 현장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결단을 했다"면서 "정부의 결단에 대해 의료계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고,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국민과 환자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난 정부에 대해 시민단체는 의대 자율배정 수용은 갈등 봉합의 대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이날 "학생들이 수업거부를 해서 학사 일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것이 국립대가 증원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주된 이유"라며 "이것은 과거 의대생과 의사 등 의료계가 자신들에게 반하는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다 같이 집단행동하면서 무력화시키고 후퇴시킨 그런 방식들인데, 결국은 또 수용해서 후퇴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이번 정부 정책도 집단행동으로 후퇴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또 남기게 되는 것"이라며 "자칫 '의대정원 원점 재검토'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오히려 더 상황을 어렵게 하고, 이후 추진도 불투명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 규모는 당초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고수한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라는 겁니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정부에서 일시적으로 탈출 전략을 세우는 것 같은데, 우리 여론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관계자도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조정한다는 것은 그동안 주장한 2000명이라는 숫자가 근거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의료계 입장이 숫자가 아니라 원점 재검토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수호 전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SNS에 “기껏 생각한다는 게 허수아비 총장들 들러리 세워 몇백 명 줄이자는 것이냐”며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하는 것밖에는 출구가 없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SNS에 "정부와 대통령실은 숫자 조정으로 협의가 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사항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한솔 기자 hs696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