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한민국서 폴리페서로 출세하기

입력 : 2024-04-29 오전 6:00:00
폴리페서(polifessor)는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일컫는 ‘프로세서(professor)의 합성어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칭하는 표현입니다. 폴리페서는 영어 사전에 없는 순 콩글리시 중 하나입니다. 영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것은 외국에는 폴리페서가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한국형 정치 참여 교수가 폴리폐서인 것이지요.
 
이번 총선에서도 정당의 공천을 받아 지역구 또는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거나 당선된 교수들이 여럿 있습니다. 학기 중에 교수가 국회의원이 되어 학교를 떠나면 그 교수의 강의를 다른 강사로 대체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급작스럽게 교수가 변경되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꼴입니다. 
 
폴리페서의 꽃은 장관 자리입니다. 장관은 정부 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으로 권한이 큽니다. 자신의 구상과 철학을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어 현실 참여 교수는 누구나 탐을 냅니다. 지금까지 장관으로 임명된 교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교수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아주 독특한 한국적 현상입니다. 선진국에서 교수로 있다 장관으로 옮겨 가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우선 연구업적 압박이 극심하여 교수가 정치권이나 관가에 기웃댈 여유가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교수는 “publish or perish’라고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라 하더라도 계속 연구를 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많이 다릅니다. 정교수 승진을 위해 연구업적이 필요하지만 일단 정년을 보장받으면 연구 압력에서 해방됩니다. 연구 안 하는 교수가 할 일은 외부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관치와 정경유착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유명한 교수보다 정치적으로 유명한 교수가 더 인기 있고 몸값이 높습니다. 사외이사 자리도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유명 교수에게 몰립니다. 
 
폴리페서가 장관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그 지름길은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대선 캠프에 주로 정책전문가와 컨설턴트가 참여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수 출신이 대선 캠프의 브레인을 맡습니다. 대선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공약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공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교수가 필요합니다. 
 
대선 캠프는 떴다방과 같습니다. 평시에는 설치가 안 됩니다. 그러다 대선 시즌이 되면 후보마다 대선 캠프를 꾸려 공약을 개발합니다. 이 과정에 많은 교수가 깊숙이 관여합니다. 대선 후보가 수십 명에 달하니 캠프도 수십 개 꾸려집니다. 
 
대선 후에 당선인이 결정되면 인수위가 꾸려지고 여기에 대선 캠프 출신 교수들이 참여하여 대선 공약을 국정과제로 발전시킵니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의 눈길을 사로잡은 폴리페서가 장관으로 발탁되는 것이지요. 요즘엔 대통령실의 권한이 커지며 수석이나 실장 자리도 인기가 있습니다. 
 
폴리페서가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는 보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검증이 엄격하고 청문회가 까다로워 리스크도 커졌습니다. 장관 후보로 임명되어 청문회에 붙여지면 발가벗겨지고 망신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장관 자리가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가문의 수치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청문회 고비를 넘겨 장관으로 임명되어도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 심판이나 권력형 비리를 사유로 검찰조사에 시달리거나 형사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김영란 법의 시행에 따라 퇴직 후 3년 동안은 재취업 제한도 받습니다. 이처럼 장관직의 매력과 보상이 크게 감소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폴리페서가 불나방처럼 모여듭니다. 
 
지난 총선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비례 대표 정당은 전설적 폴리페서인 전직 국립대 법대 교수가 창당했습니다. 그분도 공직에 안 나갔으면 존경받으며 품위 있는 교수로 잘살았을 텐데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가 패가망신하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대학에서도 해고되어 정치를 본업으로 삼은 비운의 폴리페서입니다. 이제 폴리페서가 되려면 출세하기와 더불어 살아남기 기술도 연마해야 할 것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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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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