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웹툰, 노동권 개선 '뒷전'…노동자 대 예술가 '이견'

웹툰산업 2022년 매출 1.8조, 2018년 대비 4배 성장
플랫폼 경쟁 심화 웹툰작가 업무량, 주당 50컷 → 70~80컷 증가
분량 증가로 보조작가 역할 필수…고강도 노동 문제 직면
웹툰작가노조 "만화가는 예술가이자 노동자"

입력 : 2024-05-02 오후 3:17:49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웹툰산업이 급성장을 하면서 2022년 매출이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원 가까이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웹툰산업 종사자들의 노동권 개선은 여전히 뒷전입니다.
 
무엇보다 웹툰산업 종사자를 노동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예술가로 볼 것인지를 두고 무의미한 논쟁으로 인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데요. 해당 문제에 대해 한국웹툰작가협회는 민감한 이슈라며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반면 웹툰작가노조는 웹툰산업 종사자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라고 주장하며 노동권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일 웹툰업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함께 실시한 '2023 웹툰 실태조사'에서 2022년 웹툰 산업 매출 규모는 1조8290억원으로 전년(1조5660억원) 대비 16.8% 증가했습니다. 정부가 실태 조사를 시작한 2018년(4663억원)과 비교하면 4배 이상 규모가 커졌습니다. 
 
과거 신문 연재, 단행본 발행이 주류였던 만화시장에서 웹툰 플랫폼이 활성화 하면서 규모가 커졌습니다. NAVER(035420)카카오(035720) 등 플랫폼에 웹툰을 연재하던 초기에는 일주일에 1화로 4컷 만화, 혹은 50컷 정도의 분량이 연재됐습니다. 이후 레진코믹스가 유료 만화로 성공을 거두면서 웹툰이 돈이 되기 시작하자 플랫폼이 늘어나고 경쟁이 심화됐습니다. 1회 연재 분량도 평균 70~80컷 가량 늘어났습니다. 독자의 눈도 달라져 높은 수준의 작화·이야기·분량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1회 평균 70~80컷은 작가 혼자 작업을 소화하기 어려운 분량입니다. 이로 인해 제작 과정이 콘티, 선화, 채색, 배경, 후보정 등으로 세분화 됐습니다. 작가 단독 작업에서 어시스턴트의 작업 분량이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웹툰 회사를 설립하거나 스튜디오 산하의 팀 단위 작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업이 세분화 됐음에도 웹툰산업 종사자들은 여전히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려 혹사를 당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조회수 142억회를 기록하는 등 성공을 거둔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장성락 작가는 2022년 뇌출혈로 사망해 웹툰산업 종사자들의 고강도 노동이 문제가 됐습니다. 같은 해 웹툰 '록사나' 작화 작가가 웹툰 플랫폼의 연재 압박에 유산을 한 뒤에도 계속 작업을 한 사실이 알려져 카카오(035720)엔터테인먼트가 사과한 바 있습니다. 
 
웹툰작가노조는 웹툰산업 종사자들을 만화 노동자로 보고 처우 개선을 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웹툰작가노조는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만화가'라는 명칭을 '만화 노동자'로 개정하고자 했습니다. 웹툰업계 관계자는 "노조 측에서 '만화 노동자'로 개정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한국만화가협회·한국웹툰작가 협회가 만화가는 예술가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반대를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웹툰작가협회 관계자는 만화가를 만화 노동자로 봐야한다는 노조의 의견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답변할 성질이 아니다"며 "협회 차원에서 논의하거나 입장을 정리한 적이 없고 민감한 문제라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웹툰작가노조는 예술가와 노동자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계약 관계에 따른 위치와 근로 형태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작가가 법인사업자를 내고 어시스턴트를 고용한다면 고용인 위치에 서게 됩니다. 스튜디오에 고용돼 채색, 선화, 스토리 등을 맡게 되면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 위치의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작가는 제작사에 고용된 피고용인이자 아르바이트나 직원을 고용한 고용인이 됩니다.
 
웹툰작가노조 관계자는 "만화가, 웹툰작가의 직업적 특성이 아니라 계약 관계에 따라 근로 형태가 어떤지 집중해 노동권을 개선해야 한다"며 "제작사에서 파트 작가를 고용해 줘야 함에도 도급제(주당 몇 컷 계약)로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고용인 아닌 고용인이 작가도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해당 관계자는 "작업이 분업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예술창작의 과정에 노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웹툰 작가가 노동자와 예술가 중 어느 쪽에 가깝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다"며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라고 지적했습니다. 
 
고강도 노동 현실에 작가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야 할 한국만화가협회·한국웹툰작가협회가 작가의 권리보다는 플랫폼, 제작사 편에 서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에 7개 웹툰·웹소설 단체가 반대를 했습니다. 문체부가 창작자 보호를 목적으로 문산법 제정을 적극 추진해왔지만 정작 창작자들의 반대에 부딪힌 셈입니다. 문산법 제13조에선 '판매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합의하지 아니한 가격할인에 따른 비용 등을 문화상품 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가 포함돼 있는데요. 문산법이 통과되면 플랫폼은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매일 열시 무료'(매열무)와 같은 무료 프로모션에 대한 대가를 작가에게 지불해야 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무료 프로모션에 대한 원고료는 작가가 받지 못합니다. 웹툰업계 관계자는 "무료 프로모션은 작가가 대가를 받기 보다는 이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정도"라며 "무료 프로모션을 통해 유료 결제를 이끌어 내는 수단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협회는 문산법이 도입되면 기다무, 매열무가 없어져 신인 작가 연재가 어려울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웹툰작가는 "협회가 기다무, 매열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없어진다고 해도 신인 작가 데뷔가 없지 않을 것"이라며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로 보이는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2023 웹툰 잡 페스타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
 
2023 경기국제 웹툰 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웹툰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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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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