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유가족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아쉽고 속상한 점들이 없지 않지만, 이만큼 한 것도 유가족들의 피와 땀이 밴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특별법 통과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앞으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 어머니인 박영수씨는 2일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습니다. 2022년 10월29일 참사가 발생한 지 551일만이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회담을 가진 지 사흘만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박씨는 그동안 거리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국회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삭발을 하면서 다른 유가족들과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자식이 도심 한복판에 어떻게, 왜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는 “그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특별법을 요구했는데, 전날 여야가 합의하니까 하루만에 본회의 통과가 이뤄져 허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습니다.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씨는 “특별법을 요구한 건 진상규명 때문이고, 유가족들도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진상규명이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국민의힘이 독소조항이라 주장한 부분들을 제외하더라도 일단 특별법이 통과되고 조사가 이뤄지는 게 중요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전날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수정 합의안을 내고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했습니다.
수정안에는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특별조사위원회 직권 조사 권한과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이 삭제됐습니다. 특조위 구성과 관련해선 위원장 1명과 여야가 각각 4명의 위원을 추천해 모두 9명을 두도록 했고, 국회의장 추천 몫인 위원장은 기존 여야 ‘합의’가 아닌 ‘협의’로 정하도록 수정됐습니다.
이씨는 “기존 특별법 법안 조항들도 진상규명을 위해 다 필요한 내용이었지만, 정부와 여당이 수정안을 강력히 요청했고 지난해처럼 협의 과정에서 결렬되면 안 됐다”며 “특조위 위원장 임명과 관련해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는 대신, 영장 청구와 직권 조사 부분을 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조위 구성까지 3개월의 기간이 있는데 진상을 철저히 조사할 수 있는 구성이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유가족들도 현장 증언이나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 멀어…정부·국회, 특조위 협력해야”
박영수씨는 “지난 1년7개월 동안 단식이나 삭발을 하고 노숙농성을 하는 건 엄마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가장 힘들었던 건 일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조롱 섞인 말들을 접할 때”라고 했습니다.
그는 “거리에서 피켓시위를 하는데 ‘국가 유공자 대접을 다 해줬는데, 뭘 더 바라냐’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참사의 진상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을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가결되자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특별법 처리 직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함께 거리에서 외치고 힘써주신 많은 시민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면서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첫 걸음을 떼기 위해선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별법이 정부 이송 즉시 공포되고, 특조위 구성이 신속히 착수돼야 한다는 겁니다. 또 조사위원 추천과 구성, 특조위 설치와 운영 과정에서도 정부와 국회가 진상조사 규명이 더 이상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진상조사를 위한 자료제출과 출석 등의 요구에 성실히 응하고 어떤 것도 감추거나 축소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참사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희생자 명예회복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