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올해 5조원가량 삭감된 연구·개발(R&D) 예산이 내년에 대폭 늘어날 전망입니다. 정부가 R&D 예산 집행 때 경제성을 평가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투자 규모도 늘리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계의 R&D 예산을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줄이더니 1년 만에 다시 증액 기조로 돌아선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R&D 예산을 삭감한 데 대한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인정하고 R&D에 대한 투자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변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윤 대통령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경제가 또 빠르게 성장해야만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늘어나고, 국민이 체감하는 자유와 복지의 수준도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며 "성장의 토대인 R&D를 키우기 위해 예타를 폐지하고, 투자 규모도 대폭 확충하기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연구비 카르텔' 비판…예산 삭감 '후폭풍' 직면
앞서 올해 R&D 예산 삭감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6월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연구·개발 카르텔' 문제를 지적한 뒤 급작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이후 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전년보다 5조2000억원(16.6%) 삭감한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33년 만에 R&D 예산이 삭감된 겁니다. 다만 국회는 R&D 예산 삭감 논란이 일자 정부안에서 6000억원 다소 증액한 예산을 지난해 12월 통과시켰습니다.
R&D 예산 총액을 삭감하는 바람에 과학기술계에 미친 파장은 상당했습니다. 각 대학 연구실과 출연연구기관이 일률적인 비용 감축·인력 축소에 나설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논란 확산 뒤 '재임 중 R&D 예산을 많이 늘릴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표명하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대통령실은 4·10 총선 전인 지난달 3일 내년도 정부 R&D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각 부처의 예산 편성, 재정 운영과 관련해 "부지런히 현장을 보고, 어려운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며 현장 맞춤형 예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과학계의 반발도 많이 유발하고 우려도 깊고 하니까 이제 (R&D 예산 규모를) 바꾸는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 국정수행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려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역대급 세수펑크에 3년차도 '긴축'…1인당 25만원 '무산’
윤 대통령은 "앞으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세수 여건이 역대급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위해 집권 3년 차에도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다만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이 무조건 지출을 줄이자는 의미는 아니다. 효율적으로 쓰자는 얘기"라며 각 부처에 성과가 낮거나 비효율적인 예산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해 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지난해 56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 가운데 올 들어서도 3월까지 1분기 국세수입이 84조9000억원 걷히는 데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조2000억원이 줄었습니다. 국세수입 실적이 나빠진 것은 법인세 수입이 급감한 영향이 컸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법인세 수입이 5조5000억원이나 감소했고, 기업들이 성과급을 줄이면서 소득세도 7000억원이 줄었습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과 규제 혁파에 힘을 실었습니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속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1인당 25만원 규모의 민생회복지원금 지원 요구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은 영수회담 주요 의제였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사실상 거절했습니다.
이외에도 윤 대통령은 실질적인 출산율 제고를 위해 재정사업의 구조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또 취약계층 기초연금·생계급여 확대, 고용·복지·금융 서비스 통합형 내실화, 장학금 대폭 확충, 의료개혁 완수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강조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