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안전을 위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습니다.”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이어진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본사 내 종합통제센터(Operations & Customer Center·OCC)에 들어서자 전시상황실(워룸)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본사 A동 8층 330평에 11개부서 전문가 24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OCC에서는 지구 전역을 비행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항공기 항적은 물론, 세계 각지에 떠 있는 대한항공 항공기의 엔진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었습니다.
대한항공은 이날 회사 제1원칙인 ‘절대 안전’ 운항을 위한 ‘심장부’ 4곳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4곳은 △OCC △정비 격납고 △객실훈련센터 △항공의료센터입니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 유종석 대한항공 안전보검 총괄 겸 오퍼레이션 부문 부사장(CSO)은 “절대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한항공의 최우선 가치”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년의 시간을 걸쳐 본사 리모델링을 마친 대한항공이 최첨단 설비를 갖춘 OCC와 항공의료센터를 언론에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OCC에 들어서자 가로 3m, 세로 1.5m에 달하는 대형 스크린에서 분할된 여러 화면들이 제각기 다른 채널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대형 모니터는 16:9 비율 6개 화면을 합친 대형 스크린으로, 화면에는 이날 오전 10시45분경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와 램프(주기장 일부) 운영 현황 비추고 있었습니다. 왼편에는 실시간 방송되고 있는 세계 주요 뉴스 채널들이 화면을 채웠습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테러, 재난, 자연재해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적극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23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OCC에서 운항관리사가 KE082편과 실시간 교신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비행중인 항공기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기가 설치돼 있는 OCC는 24시간으로 운영돼 잠들지 않는 ‘지상의 조종실’로 불립니다. 실제로 이날 비행계획을 수립하고 연료소비량을 산출해 항공기 운항을 통제·감시하는 안전 운항의 필수 인력 ‘운항관리사’는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하고 있는 KE082편 기장과 교신하며 현재 기상 등의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대한항공은 최근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싱가포르로 향하던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 비상 착륙한 사건을 예로 들며, 기상정보 확인을 비롯해 난기류시 조치 방안 등 사전 운항 준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황윤찬 대한항공 통제운영팀 Network OPS 그룹장은 “안전 운항을 위해 비행계획 단계에서 난기류 회피 지역을 선정하고 있고, 선행 항공편 기장이 운항 중 터뷸런스(난기류)가 있다는 레포트를 OCC에 공유하면 후속 항공편에 전달하고 있고, 또 IATA에는 26개 국가의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터뷸런스 데이터를 받아 공유해 사전에 터뷸런스 발생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항공 161대 항공기 중에 20여대가 IATA의 데이터베이스를 받고 있습니다.
OCC는 이 같은 안전관련 운항관리센터(Flight Control Center·FCC) 외에도 정비지원센터(Maintenance Coordination Center·MCC), 탑재관리센터(Load Control Center·LCC), 고객서비스 관련 네트워크운영센터(Network Operation Center·NOC) 등 총 4개의 센터가 모여 기능하는 운항 심장부입니다.
23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OCC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스크린. 전 세계에서 비행중인 대한항공 항공기 항적과 엔진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대한항공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기 정비 규모를 갖춘 격납고도 공개했습니다. 국내항공사 중에서 격납고를 운영하는 곳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전부입니다.
김포 격납고는 축구장 2개를 합친 규모이며, 정비 인력은 약 3100명에 달합니다. 이날 격납고에는 20석 규모의 전용기 1대, A220, B737-800 2대 등 4대에 대한 정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은 인천공항에도 김포와 같은 규모의 격납고를 갖추고 있고, 부산 테크센터에는 항공기 도색 작업을 할 수 있는 격납고를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부천에선 항공기 엔진 정비가 전문적으로 이뤄집니다.
격납고 역시 각종 부품을 검사하고 수리하기 위해 24시간 운영되고 있습니다. 철저한 정비 덕분에 기체 결함에 따른 지연과 결항 없이 정시에 출발하는 정시 운항률도 높습니다. 실제로 항공기 제작사 보잉이 지난해 발표한 전세계 정시운항률을 보면, 대한항공이 99.17~99.84%(기종별 상이)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 세계 항공사 평균보다 1~2%p 높은 수치입니다.
23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정비 격납고에서 대한항공 A220과 진에어 B737-800이 정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탑승객 입장에선 기내 비상상황 시 객실승무원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사실 이 객실승무원들의 안전 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객실훈련센터를 직접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니 안전 교육 수준에 대한 물음표는 마침표로 바뀌었습니다.
2003년 대한항공 본사 건물 옆에 개관한 객실훈련센터는 지하 2층~지상 2층, 연면적 7695㎡ 규모로, 실제 상황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보잉 747 등 항공기 동체 일부 모형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요.
이곳에서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은 연 1회 정기 안전 훈련을 받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훈련과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항공기가 바다나 강에 비상 착륙할 경우를 대비한 비상 착수 훈련은 가로 25m, 세로 50m 크기의 대형 수영장에서 이뤄집니다. 이 밖에 항공기 기종별로 다른 도어 작동법 훈련, 의료 장비와 화재 진압 장비. 비상 탈출 장비 점검 및 사용법도 모두 이곳에서 익힙니다.
지난 2022년 10월23일(현지시간)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 대한항공 항공기가 폭우로 공항 활주로를 지나쳐 비상착륙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당시 객실승무원들의 즉각적인 비상탈출 지시로 다행히도 인명피해가 없었습니다. 평소 철저한 안전 교육을 받은 덕분인데요. 유 부사장은 “올해 안전 목표치는 1.45로 작년(1.53)보다 한 단계 더 강력하게 올렸다”고 말했습니다. 수치가 낮을수록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23일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이 본사에 마련된 객실훈련센터에서 비상상황 발생 대비를 위해 B747 비상탈출 슬라이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OCC가 하늘과 땅의 모든 항공기를 관할하는 운항 심장부라면, ‘항공안전전략실’은 이러한 안전 운항을 위한 초석이 되는 두뇌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공기 운항·비운항에 대한 안전 요인을 총괄 및 관리하는 항공안전전략실은 안전기획팀, 안전품질평가팀, 지상안전팀, 안전조사팀, SMS(Safety Management System)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안전'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기 위해 직급별 참여하는 촘촘한 회의도 마련돼 있다고 하네요.
부문별 안전 담당 팀장급이 참석하는 ‘안전보안월례회의’는 매월 실시하고, 부서장 급이 참석하는 ‘안전운항관리자회의’와 사장, 부사장 등 경영진이 참석하는 ‘중앙안전위원회’는 매 분기 실시합니다. 특히 중앙안전위원회는 종합적인 안전 보안 정책을 수립 및 계획하는 대한항공의 최상위 안전회의체로, 안전 부문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체입니다.
마지막으로 임직원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항공의료센터’는 단순히 임직원 건강만을 관리하는 곳이 아닌, 기내 응급 환자 발생을 대비하기 위한 ‘24시간 응급의료콜시스템’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월 네팔을 향하던 항공기 기내에서 환자 승객이 발생했을 때 승객 중 의사를 찾을 수 없자, ‘24시간 응급의료콜시스템’을 활용해 환자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최윤영 대한항공 항공의료센터 센터장은 “660평으로 이뤄진 이곳에는 항공의료전문가, 산업보건전문가, 간호사, 임상심리전문가, 방사선사 등 41명의 항공의료인들이 포진돼 있고, 서울대학교병원 연세대학교병원 등과도 협력하고 있어 필요한 진료와 치료도 여기서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항공 모든 항공기에 탑재된 의료기기들. (사진=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