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국내항공사들이 항공기에 지속가능항공유(Sustainable Aviation Fuel·SAF)를 사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대한항공(003490) 아시아나항공(020560) 등 국내항공사들이 취항하는 유럽 공항에서 SAF를 2% 혼합해야 하고, 내후년인 2026년부터는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편에 SAF 1% 사용이 의무화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와 업계는 정부 정책 마련이 시급한 동시에 정부, 항공사, 정유사, 인천공항공사가 ‘사각 편대’를 이뤄야 SAF 상용화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대한항공,
GS(078930)칼텍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대한항공 미주노선 화물기 B777에 SAF 2%를 혼합한 항공유를 급유해 인천~LA를 6번 오가는 실증사업을 진행하며, SAF 개발에 나섰습니다.
정부와 항공사, 정유사, 인천공사가 SAF 실증사업에 나선 이유는, 조만간 주요 국가에서 시행할 SAF 관련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SAF는 화석연료가 아닌 동식물성 기름, 폐기물 등과 같은 친환경 연료로 생산되는 항공유로, 기존 등유를 사용하는 제트연료와 비교해 온실 가스를 약 80% 감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가격은 기존 항공유 보다 최대 6배 높고 제조업체가 세계적으로 몇 군데 되지 않아 사용이 제한적입니다.
SAF 도입에 속도를 내는 건 항공기가 배출하는 탄소량이 자동차, 기차와 비교해 20배 가까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은 기차 14g, 버스 68g, 비행기가 285g으로 비행기 이동 시 기차 대비 20배가 넘는 탄소가 배출되는 셈입니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지만, 고밀도 에너지가 필요한 항공기는 배터리 대체가 어렵기 때문에 항공유를 써야한다”면서 “화석연료만 주입할 시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 그 문제를 환경 차원에서는 SAF를 혼합해서 쓰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항공사들은 ‘2050년 넷제로(탄소 순배출 제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정책들을 마련해 왔습니다. 항공사뿐만 아니라 이를 시행하는 국가에서도 제도를 발 빠르게 마련하고 있는데 가장 앞선 국가는 미국, EU, 일본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SAF에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SAF를 판매하거나 사용할 경우 감축한 수준에 따라 갤런 당 1.25~1.75달러 세액을 공제해 주기로 했습니다. 미국 SAF 생산업체 란자제트(LanzaJet)는 최근 미국 항공사 사우스웨스트로부터 3000만달러를 투자 받았습니다. 회사가 투자를 통해 SAF 생산량을 늘리는 동시에 사우스웨스트가 SAF를 공급받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미국은 이러한 정책들을 통해 오는 2026년까지 재생에너지산업에 3700억달러 가량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2030년까지는 SAF 생산량을 연간 최소 30억 갤런으로 확대, 2050년까지는 SAF 100%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EU는 당장 내년부터 회원국 27개국 전역 공항에서 항공기에 기존 항공유에 SAF를 2% 섞도록 할 방침입니다. 그리고 혼합 비중을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2022년 샤를드골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에 모두 SAF를 1% 넣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이 정책을 따르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현지에서 계약 맺은 정유사가 SAF 취급하지 않아 벌금 성격의 ‘환경부담금’을 매달 내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2026년부터는 글로벌 에너지기업 쉘로부터 SAF를 공급받을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6월부터 프랑크푸르트·파리 등을 순차 취항하는
티웨이항공(091810)도 예외는 아닙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도 SAF 정책을 마련한 상태입니다. 일본은 2030년까지 SAF 비중을 10%까지 늘릴 계획을 갖고, 2026년 가동 예정인 연간 10㎘(킬로리터) 규모 SAF 제조 설비인 이데미츠코산 프로젝트 설비 투자에 257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쿄 하네다와 나리타공항은 이미 SAF 급유 시설이 갖추고 있습니다. 제2터미널을 확장 공사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에는 SAF 전용 시설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도 2025년까지 SAF 5만톤 사용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 국영 정유사 시노펙(Sinopec)은 지난달 프랑스 정유사 토탈 에너지스(Total Energies)와 SAF 생산 계약 체결했습니다. 양사는 중국에 있는 시노펙 생산 시설에서 연간 230만톤 SAF 생산량 확보를 목표로 합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SAF를 이용하고 싶어도 급유 시설이나 정유사가 없다”면서 “제반시설이 갖춰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항공은 2023년 9월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GS칼텍스와 함께 바이오항공유(Sustainable Aviation Fuel) 실증 운항기념식을 개최했다. 사진은 급유된 바이오항공유(SAF). (사진=대한항공)
“국내 정유사들 SAF 생산 기술 충분…정부 정책이 관건”
반면, 한국은 SAF 상용화를 위해 이제야 첫 발을 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법적으로 국내 정유사들은 ‘석유 정제 제품’만 팔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SAF 생산이 어려웠는데, 최근 이 법이 SAF도 허용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SAF도 생산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석유정제업의 범위를 ‘친환경 정제원료를 혼합한 것’까지 확장한 것이 개정안의 골자입니다. SAF 원료인 바이오연료, 재생합성연료 등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 항공유 대비 3~6배 비싼 SAF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유사들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유인책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재훈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현재 SAF 가격이 최대 6배 정도 비싼데, 기업입장에서는 비싼 가격으로 팔수록 손해가 나 잘 안하려한다”면서 “기업들을 어떻게 SAF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할 지가 관건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이 갖고 있는 정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제 기술을 갖고 있어도 SAF 생산 시설을 갖추지 않는 건 손해가 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세액공제나 인센티브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입니다.
이 교수도 “SAF 공급을 늘리려면 정유사들이 SAF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세액공제나 인센티브와 같은 유인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투자 유인책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교수는 “항공사가 급유하는 인천국제공항 등에 SAF 급유 시설을 갖춰야 글로벌 공항 시장에서 위상을 올리고 경쟁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