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윤석열을 세상으로 끌고 나온 건 단 한마디였습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10월21일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사는 이 말로 ‘별의 순간’을 잡을 줄 몰랐을 겁니다. 검찰 등 법조계에서야 윤석열이라는 검사를 알지 세상 사람들은 덩치 좋고 목소리 걸걸한 ‘저 양반’이 누군지 전엔 잘 몰랐습니다.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되는 등 수사에 외압이 심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이 나온 겁니다.
'검사 윤석열'의 명언
검사 윤석열은 이후에도 여러 '명언'을 내놨습니다. 2019년 7월엔 검찰총장이 됩니다. 자신을 총장에 앉힌 조국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를 개시한 후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때도 명언 행진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2020년 10월 22일)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2021년 3월)
비장미가 넘치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결국 윤석열 총장은 대한민국 행정부 수장까지 오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건 ‘8할이 명언’인 셈입니다.
'검사 이원석'의 명언
이원석 검사는 글을 잘 씁니다. 사례를 들어 이해하기 쉽고, 논리적 전개로 ‘글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명언’으로 각인될 정도의 말은 없지만, 고개를 끄덕일만한 발언은 제법 있습니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시선이 다릅니다. 시선이 다르면 보는 것이 다릅니다. 보는 것이 다르면 생각과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2022년 9월5일)
“한비자의 ‘법불아귀(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승불요곡(먹줄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처럼 법 집행엔 예외도, 혜택도, 성역도 있을 수 없으며, 검찰권은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 행사되어야만 합니다.(2022년 9월16일)
”검사가 해결해야 할 사건은 치열하게 살아있는 사건“(2023년 8월1일)
”갈림길에서 두려워마라“(2023년 12월)
이제 이원석의 시간
대중은 강렬함에 끌립니다. 윤 총장은 간결하고 힘 있는 말을 그때마다 직설적으로 하면서 별의 순간을 넘어 별에 올라탔습니다. 총장 시절 추미애 법무장관과 대척점에 서면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말을 뱉고 스스로를 ‘성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윤 대통령’의 모습은 말과 다릅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사람(자신)에 충성해야 한다”로 바뀌었고, 검찰이 김건희 여사에 대해 수사할 움직임을 보이자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는 말을 예전과는 다르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현재 검찰총장에겐 “법무장관의 부하”라고 강조합니다.
말은 신념입니다. 행동이 묻어나옵니다. 이 총장은 최근 김 여사 수사에 “인사는 인사, 수사는 수사”라고 했습니다. 2년 임기 중 남은 4개월 동안은 ‘멋만 부리는 말’을 한 건지, 자신의 말을 결기 있는 실천으로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제 검찰은 윤석열의 시간이 아니라 ‘이원석의 시간'입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