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 지각' 예고…정점에 '국회법 86조'

22대 국회 원구성 양보없는 싸움
"민주, 법사위 절대 양보 안할 듯"
"여, 운영위라도 챙기는 게 실리"

입력 : 2024-05-31 오후 4:16:36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됐지만 여야의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지각 개원'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특히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 등을 겨눈 동시다발적 '특검'(특별검사) 법안이 발의되면서 여야 모두 입법의 게이트키퍼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둘러싼 대전에 돌입했는데요. 핵심은 국회법 제86조에 규정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입니다. 22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고차방정식으로 격상되면서 최악 땐 '역대 최장 지각'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원구성 평균 '42일'…최장 지각은 14대 '125일'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원내지도부는 핵심 상임위원장인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대치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국회 여의도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는 원 구성과 관련해 여당을 본격 압박하고 나섰는데요.
 
이 대표는 "국회법에 따라 6월7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민주당 단독으로 원 구성을 마칠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라고 밝혔습니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본회의 표결을 통해 18개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임기 개시일 7일 이내인 내달 5일 첫 임시회를 열고 의장단을 선출해야 합니다. 또 임시회 후 3일 안에는 상임위원장을 뽑아 내달 7일까지 원 구성 협상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원 구성을 놓고 협상이 시작된 13대 국회 이래 국회는 단 한 번도 법정 기한을 맞춘 적이 없습니다. 13대 국회부터 22대 국회까지 원 구성에 평균 42.39일이, 특히 전반기 원 구성에는 47.44일이 소요됐습니다. 최장 지각은 14대 전반기 국회로 125일이 소요됐습니다. 
 
민주당은 원 구성 법정 시한을 원칙대로 마치겠다는 입장입니다. 전날 열린 22대 국회 첫 의원총회에서 일차적인 상임위 배정안을 공개했는데요. 상임위원장을 맡게 될 3선 의원 31명은 명단에서 일단 제외됐고, 18곳의 상임위원회 중 16곳에 간사를 배치했습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난 25일 만나 원 구성을 협의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연기되면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자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관례에 따라 1당이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만큼 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둔 운영위원장도 여당 몫이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총선 민심을 받들어 법사위와 운영위를 모두 차지해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본회의 부의 막는무소불위 '체계·자구 심사권' 
 
법사위는 본회의에 오를 법안의 '최종 관문' 역할을 합니다. 법사위에서 법안 심사를 하지 않거나 통과를 허락하지 않으면 본회의 회부가 거의 불가능한데요. 막강한 권한 때문에 '상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단독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국회법 제86조에 따른 '체계·자구 심사권'은 법사위의 핵심 권한으로 꼽힙니다. 원래 법안의 위헌 소지나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 등을 살피고 법률 용어를 다듬는 것인데, 본회의 부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세무사법 개정안'이 장기 계류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 2016년 11월30일에 의결됐지만 2017년 11월까지 1년간 법사위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완료하지 않은 겁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법사위 사수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180석의 거대 의석을 가진 1당이었는데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양보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법을 본회의에 상정도 못 시킨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상대적 ‘온건파’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면서 22대 국회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법사위원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입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21대에서 관례대로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양보했더니 법사위원장이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면서 독단적으로 모든 법률을 막아버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정 안되면 전 상임위원장을 다 주더라도 법사위원장 만큼은 민주당이 가져가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경우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는 만큼 운영위원장은 국민의힘에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영위원장은 여태 한 번도 야당이 맡은 적이 없는 데다 정부와 매개 역할도 해야 해 여당이 운영위원장, 국토위원장 등을 가져오도록 협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입니다. 박 평론가는 "여당이 '민주당 독주'라고 뻗대봤자 허공에 외치는 것밖에 안 된다"며 "대통령의 거부권이 법적 권한이듯 표결을 통해 민주당이 18개를 다 가져가는 것도 법의 정신"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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