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검찰 조직과 시스템을 개혁하고 중립성을 보장해 '탈정치검찰' 과제를 완수하는 건 지난 30년간 보수·진보정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거론된 의제입니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고선 '검찰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면서 검찰개혁을 바라는 여론도 높아졌습니다. 22대 총선에서 '윤석열정부 심판론'을 내세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이 역대급 승리를 거둔 배경에도 검찰독재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때문에 22대 국회에서도 '검찰개혁의 시간'은 다시 시작될 분위기입니다. <뉴스토마토>는 한국 정치엔 정치혁신이 필요하고, 정치혁신을 위한 과제 중 하나는 검찰개혁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를 위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전직 검사, 시민사회 인사, 22대 국회의원들을 릴레이로 인터뷰해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형집행권까지 모두 가진,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 가운데 하나만 가지더라도 '힘센 기관'이라고 부르는 데 모자람이 없을 법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은 형사사법권 집행에 관해선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과도한 권력을 틀어쥐게 되면 안으로 곪게 마련입니다. 외부에서 견제할 세력도 없으면 '브레이크 없는 폭주열차'가 됩니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신성식 전 검사장(59·사법연수원 27기)은 <뉴스토마토>와 지난달 31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검찰개혁의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며 "이것이야말로 견제와 균형이 상실된 '폭주열차' 검찰을 바로잡고 제 역할을 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5월31일 신성식 전 검사장이 서울 모처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검찰이 틀어쥔 기소·수사권 분리가 핵심
신 전 검사장은 2001년 검찰에 발을 들인 후 광주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서울동부지검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수사를 관할하는 3차장을 역임한 뒤 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이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수원지검장 등을 지낸 특수통입니다.
신 전 검사장은 20년 넘게 검찰에 검사로 몸담았지만, '검찰권'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마냥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신 전 검사장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현재 검찰은 균형이 사라지고 누구에게도 견제를 받지 않는 집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면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수사를 하다 범죄혐의가 드러나지 않으면 중단하고 기소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 검찰은 무리하게 수사를 하고 누가 봐도 무리한 기소를 강행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기소를 한) 검찰이 잘못을 지지도 않는다"면서 "범죄가 안 될 경우에도 '당한 사람'만 피해를 보는 왜곡된 구조"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렇다면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 전 검사장은 "수사는 기본적으로 공부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범죄를 밝혀내는 것은 경험이 필요하다. 실력이 쌓이려면 오랫동안 몸에 밴 경험치가 필수"라면서 "수사는 수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검찰은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기소권을 통해 감시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검찰에는 검사만 있는 게 아니다. 경험을 실력으로 체득한 베테랑 수사관들이 많다"면서 "경찰이나 다른 기관의 특사경(특별사법경찰관) 가운데서도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수사관들을 중심으로 수사전문사법기관을 세우고, 수사에 집중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국가수사청'같은 기관을 신설해 수사전문인력들이 수사를 전담하고, 검찰은 공정성 있게 수사를 했는 지를 기소권을 통해 제어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신 검사장은 수사기관은 전담청의 방식으로 만들어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문재인정부에서 검찰개혁을 할 때 경찰이 국가수사본부를 만들어 수사의 상당 부분을 맡게 했지만, 업무부담과 역량 등 부족으로 '미완의 수사권조정'에 그쳤다는 설명입니다.
신 검사장은 "국가수사청뿐 아니라 마약청, 금융수사청 등 전문성이 필요한 수사기관을 여럿 만드는 방향으로 수사권을 나눠도 된다"며 "마약은 조직폭력배가 손대는 경우가 많은데, 마약조직을 잘 알아야 일망타진할 수 있기 때문에 마약청 같은 조직을 둬 수사하게 하고, 공정거래와 조세, 금융 등도 전문 지식이 요구돼 독립 수사기관을 두면서 인재까지 양성하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기 다른 수사청들이 탄력을 받으면 법률지식에 밝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대거 모이면서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이후 검찰 기능의 일부를 나누면 견제와 균형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전 검사장은 그렇다고 검찰에 기소권만 부여해 수사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각 수사청들의 이해가 얽혀 미루는 사건이나 중대범죄 등은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거나 직접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겁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검찰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법률에 검찰의 수사지휘권과 직접 수사할 범위를 '열거주의식'으로 못 박아 제한적인 수사권을 행사토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신 전 검사장의 견해처럼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새롭게 형사사법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입니다.
신 전 검사장은 "검찰개혁이라기보다는 '수사구조개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전면 개편 속에서 검찰의 반발과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 등 행정부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뚝심 있는 추진력으로 개혁을 이뤄내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seoultub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