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2026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규모의 코스피 상장사 위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법정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도입됩니다. 2030년을 기점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이 ESG 공시가 의무화될 전망인 만큼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 역시 ESG 경영 강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요.
제약 바이오 기업 상당수가 다른 산업군에 비해 더디게 ESG 경영에 대응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의 양대 축인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자국 시장 발전과 보호를 위해 ESG 경영 공시를 선제적 규율하고 강화하고 있죠.
한국ESG기준원(KCGS)이 지난해 공개한 ESG 등급 평가 결과에 따르면 제약 바이오 기업 중 최상위 등급인 S등급을 받은 기업은 전무 합니다. KCGS의 ESG 등급은 총 7등급으로 분류됩니다. 최상위 등급인 S등급부터 A+(매우 우수), A(우수), B+(양호), B(보통), C(취약), D(매우 취약) 등으로 구분되죠. 과거에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적인 정량적 지표가 중요한 기준이 됐지만,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면서 ESG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매년 국내 ESG 평가 기관들이 제약 바이오 기업의 ESG 등급을 발표하지만, 전 부문에서 A등급을 획득하거나 최상위 등급을 받은 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ESG 경영 도입 편차도 커 10대 제약 바이오 기업과 그 외 중견 기업 간 ESG 등급 격차도 극명합니다. 일부 제약 바이오 기업들은 ESG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연간 활동을 알리고 있지만 ESG 경영 내재화, 체질 개선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죠.
10대 제약·바이오 기업 및 계열사 '2023 ESG 등급 평가'(그래픽=뉴스토마토)
ESG 경영 '양극화'
KCGS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ESG 통합 등급이 전년도 A에서 한 단계 상승한 A+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제약 바이오 섹터 내 통합 A+등급은 최고 등급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케미칼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환경과 사회 부문에서 A등급을 받았고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A+를 받았습니다. SK케미칼은 2022년 KCGS 평가에서 처음으로 통합 등급 A+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A+등급을 받았습니다. SK케미칼은 환경과 사회 부문에서 A+, 지배구조 부문에서 A를 획득했습니다. 반면 셀트리온을 비롯해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은 통합 등급이 양호 등급에 미치지 못했데요. 셀트리온은 B등급, 셀트리온헬스케어는 C등급, 셀트리온제약은 D등급을 받았습니다.
10대 제약사 중에선 유한양행과 HK이노엔이 A등급을 받았고, 종근당과 대웅제약, 녹십자, 한미약품, 보령, JW중외제약이 B+등급을 광동제약과 제일약품은 C등급을 받았습니다. 10대 제약사 외 30위권 중견 제약사 중에서는 동아쏘시오홀딩스와 한독만이 A등급을 일동제약과 서흥, 경보제약은 B+등급을 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ESG 경영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라이선스 계약, 기술수출, 기관투자자들의 투자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지금부터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ESG는 유통, 공급망뿐만 아니라 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에도 직결되는 문제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ESG 경영을 위한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원장은 "업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 역시 제약 바이오산업 특수성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견 제약사 '2023 ESG 등급 평가'(그래픽=뉴스토마토)
ESG 평가, "산업별 특징 반영해야"
ESG 경영에 대한 인식과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명중 제약바이오협회 경영기획팀장은 "과거에는 내수 시장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과 유럽 국가 진출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ESG 공급망 실사와 가이드라인 기준이 높아 ESG 경영은 글로벌 진출의 필수 조건이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의무적으로 ESG 경영 공시를 해야 하는 기업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글로벌 ESG 스탠다드에 맞게 기업의 체질 개선이 돼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경영활동에 장애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다만 기업 규모에 따라 ESG 경영 도입과 관리에 편차가 있는 만큼 ESG 등급 평가가 각 산업의 개별적인 특징을 포괄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ESG 경영 개선에서 명확한 변화가 있다면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기업의 규모나 자금력, 경영 여건에 따라서는 변화의 폭이 작을 수도 있는데,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ESG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나 개선율에도 의미를 부여해 기업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주요 바이오 기업 본사와 연구소가 입주한 송도국제도시 전경(사진=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