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실손보험금 논란…보험사에만 관대한 금감원

분쟁 줄이고 보험사 손해율 손쉽게 해결하려는 '행정 편의주의'

입력 : 2024-06-1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보험금 지급 문제에 있어 금융감독원은 유독 보험사 편을 드는 경향이 짙은데요. 은행과 카드 등 다른 업권에 가혹할 만큼 강도 높은 감독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됩니다. 최근 실손의료보험금 부지급이 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는 모습입니다. 
 
비급여 이용액 많을수록 보험금 부담↑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고 보험 분쟁조정을 예방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내달 1일부터 4세대 실손 가입자를 비급여 이용량에 따라 1~5등급 분류하고 보험료에 차등을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보험료 갱신 전 1년간 수령한 비급여 보험금 수령액이 없는 1등급에게는 보험료를 할인해주고 100만원 미만으로 이용한 2등급은 현행대로 유지, 100만원 이상 비급여를 수령한 3등급 이상에는 보험료에 할증을 더하는 방식입니다. 필요 없는 비급여 청구를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실손보험금은 적자폭이 커서 보험사들이 지급을 꺼려하는 항목입니다. 의무보험 성격인 자동차보험과 마찬가지로 실손보험도 애초에 보험사에 손해가 불가피한 구조로 설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지급 심사를 깐깐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실손보험은 1조9738억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전년 대비 적자폭이 29.0% 커졌습니다.
 
실손보험은 피보험자가 부담한 의료비의 일정 금액을 보상하는 보험상품입니다. 의료비 부담에 대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위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완형으로 도입됐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가입하면서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고 불리기도 합니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5145만명인데 이 중 77.7%는 실손보험 가입자(3997만명)입니다. 자동차보험 가입대수 2541만대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적자는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료 수익은 지난해 기준 14조4429억원으로 전년 대비 9.5% 증가했습니다. 반면 보험료 수익에서 발생 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뺀 보험손익은 1조9738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폭이 29% 커졌습니다.
 
보험료 수익은 늘었지만 손실을 본 이유는 손해율이 증가한 영향입니다.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율은 103.4%로 전년 대비 2.1%포인트 증가했습니다.
 
금융당국은 비급여 보험금을 손해율 증가의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무릎줄기세포주사 등 신규 비급여 항목이 계속 출현하는 등 전체 실손보험금 중 비급여가 높은 비중 차지하고 있다고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비급여 보험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질환 치료와 병·의원급 주사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실손보험 누수로 지목된 비급여는 진료비에서 급여를 제외한 항목입니다. 건강보험 보장 항목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합니다. 따라서 소비자와 보험사 간 실손보험 분쟁은 대부분 비급여 보험금을 두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비급여 항목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가격 통제에서 자유롭습니다. 의료기관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실손보험을 악용한 보험금 누수 문제로 이어집니다. 수익을 올려야 하는 의료기관은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게 필요 없는 비급여 치료를 권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지난해 실손보험은 1조9738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사진=뉴시스)
 
보험사에만 유리한 보험금 누수방지책
  
실손보험금 누수 방지 대책은 나오고 있지만 소비자 분쟁 해소로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누수를 위해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는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목적이 보험사의 부지급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유독 실손보험에 관해서는 보험사에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요. 보험 분야가 소비자 분쟁이 많은 업권인 만큼, 분쟁 소지를 줄이고 보험사의 손해율도 손쉽게 해결하려는 일종의 행정 편의주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감원은 최근 보험 분쟁 조정의 신속한 처리와 예방을 위해 보험권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와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현대해상의 사례를 모범으로 제시했습니다. 의료자문 비중이 높은 도수치료 및 요양병원 장기입원 치료에 의료자문 대신 주치의 책임심사제를 적용한 사례입니다.
 
의료자문은 보험사와 소비자가 보험금 지급사유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실시하지만, 의료자문 후 보험금 부지급 판정이 날 경우 소비자와의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감원이 현대해상의 사례를 모범으로 꼽은 이유는 궁극적으로 분쟁을 줄이는 것입니다. 현대해상이 특정 치료에 도입한 주치의 책임심사제는 환자를 직접 진료한 주치의 소견만으로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분쟁이 줄어들 수 있을 거란 예상입니다.
 
그러나 금감원의 이러한 시각이 실효성을 나타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DB손해보험이 주치의 소견을 두고 암환자들과 실손보험금 지급 분쟁을 겪고 있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주치의 정의를 두고 수술과 진료, 치료 등을 담당한 의사에 대해 보험사와 환자 간 해석이 엇갈리면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배우경 전 서울의대 비상대책위원회 언론대응팀장은 "아직까지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으면서 환자의 편의성도 키우는 효과적인 정책은 안 나오는 상황"이라며 "실손보험 가입자를 늘리더라도 보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손보험금 누수를 줄이고 소비자 분쟁도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대책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DB 실손의료비 부지급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3일 서울 강남구 DB손해보험 본사에서 실손보험금 부지급을 규탄하며 의료자문 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시진=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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