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제약 바이오 산업군에 대한 ESG 등급 평가에서 특히 지배구조 부문이 취약해 기업의 경영에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배구조는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하게 작동돼 책임경영을 실천하는 것을 지향하며 기업의 가치, 평판, 신뢰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기업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ESG 경영에서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죠.
하지만 국내 주요 제약 바이오 기업 대다수가 오너 2, 3세들이 지분승계를 통해 최대 주주에 등극해 경영 최전선에서 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죠. OECD 기업지배구조의 기본 원칙은 경영과 소유가 철저한 분리이며 주요 국가들도 이를 채택하고 있죠. 하지만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은 보편적으로 오너와 최대 주주가 동일시됩니다.
문제는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 경영권 분쟁, 이익 사유화 문제로 인한 오너 리스크로 책임경영에 취약하고 지배구조가 불안정해질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한 파급력과 피해는 막대한데요.
한국ESG기준원(KCGS)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지난해 10대 제약사 중 지배구조(Governance) 부문에서 최우수 등급인 S와 매우 우수한 수준인 A+등급은 없었습니다. 유한양행과 HK이노엔이 A등급을 받았고, 종근당홀딩스와 대웅, 녹십자홀딩스, JW중외제약은 양호 수준인 B+등급을 받았습니다. 제일약품은 평가 등급 중 가장 낮은 D(매우 취약)를 받았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1분기 기준 제일약품의 최대 주주는 49.24%의 지분을 보유한 제일파마홀딩스입니다. 제일파마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57.80%의 지분을 소유한 한승수 제일약품 회장인데요. 한승수 회장은 창업주인 고 한원석 전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 2세 경영체제를 유지해오다 최근에는 오너 3세 경영승계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10대 제약사 및 지주사 지배구조 ESG 등급 평가(그래픽=뉴스토마토)
한승수 회장의 장남인 한상철 제일약품 사장은 2015년 경영기획실 전무이사에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오너 3세 승계 작업의 시작을 알렸죠. 이후 제일약품은 2017년 돌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제일파마홀딩스를 지주사로 두고 제일약품과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로 탈바꿈했습니다. 즉 한승수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지주사인 제일파마홀딩스의 지분을 장악하고 제일약품과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인데요. 한상철 사장은 제일파마홀딩스의 2대 주주로 9.70%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미약품그룹도 승계자금 조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 문제는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해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죠. 한미약품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은 대주주 4인은 약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중 절반은 납부했고 나머지 2600억원에 달하는 잔여 상속세 자금 마련 방법을 놓고 임종윤·종훈 형제와 송영숙·임주현 모녀 간에 발생한 이견은 결국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송영숙·임주현 모녀 진영에서 추진했던 OCI그룹-한미그룹 통합 계획은 임종윤·종훈 형제의 반대로 무산됐고, 이후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경영에 복귀했지만, 뚜렷한 상속세 마련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죠. 경영권을 둘러싼 오너 일가 간 갈등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난달 14일 송영숙 회장이 돌연 한미사이언스 공동 대표이사에서 해임되고 임종훈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되면서, 가족 갈등과 상속세 마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 일부를 처분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데요.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투자자가 나타날지 의문이며, 지분을 인수하는 투자자와 공동 경영은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는 지나치게 오너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오너 리스크 부담이 항상 있고, 오너 경영승계를 위한 지배력 강화 과정에서 기업경영에 발목을 잡는 일도 발생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오너 경영승계나 지배력 강화는 본질적인 기업의 성장과 내실 강화와는 별개인 오너 개인의 문제인데 경영권 분쟁이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오너 2, 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 지배구조도 복잡해져 여러 분쟁의 소지도 있는데 결국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