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여름나기)①(현장+)쪽방에서의 3박4일…"여름이 무섭다"

동자동서 '쪽방 살이'…낮 기온 30도지만 에어컨 엄두 못내

입력 : 2024-06-14 오후 6:10:25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오자 큰 사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자 말로만 듣던 동자동 쪽방촌 초입 전경이 펼쳐졌습니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깔끔하네'였습니다. 카페도 있었고, 골목도 넓었고, 직장인도 종종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골목길로 들어서자 쪽방촌 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이 얹혔고 벽돌과 조립식 패널로 대충 만든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쪽방촌에 발을 내딛자 화장실 냄새와 쓰레기 악취가 풍겨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3박4일 동안 묵을 방으로 가려고 2층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복도와 방에선 곰팡이와 담뱃재 냄새가 뒤섞인 지린내가 진동했습니다.  
 
1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화장실·담배 냄새 지속…더위로 인해 상의 벗고 방문 열어
 
10일 오전 8시30분. 동자동 쪽방에 입주했습니다. 2층에 있는 방은 1평 남짓입니다. 외관은 생각보다 깨끗했지만, 담뱃재 냄새와 뭔가 쉰 듯한 냄새가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공간도 비좁았습니다. 방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 미리 깔아놓은 이불과 부딪힐 정도였습니다.
 
오전 11시40분. 시간이 지나면서 햇볕이 강해졌습니다. 쪽방은 점점 더워졌습니다. 2층의 다른 방에 거주하는 할아버지가 상의를 탈의한 채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엿본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어놓은 채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더워서 그냥 문을 열어놨다는 겁니다.
 
점심 식사는 사발면으로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쪽방이 가뜩이나 더웠는데, 뜨거운 음식을 먹으려니 고역이었습니다. 선풍기를 틀어야만 했습니다.
 
3박4일 동안 지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오후 2시32분. 서울의 최고 온도는 31.1도까지 올랐습니다. 가부좌를 튼 다리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바닥에 앉으니 엉덩이가 배겼습니다. 이불 위에 앉자니 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땀이 온몸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창문을 열면 다소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선풍기를 안 틀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밤이 되자 더 문제였습니다. 선풍기를 틀어야 더위가 해소됐습니다. 스마트폰의 날씨앱으로 확인해 보니 10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새벽의 동자동 기온은 22도였습니다. 열대야 기준인 25도엔 미치지 못했지만, 냉방 시설이 미흡해 찜통 같은 쪽방에선 쉽게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11일 점심 시간이 되자 쪽방촌 봉사단체에서 도시락을 들고 와서 문들을 두드렸습니다. 앞방 문을 두드리던 봉사자 A씨는 기자에게 "앞방 분 계시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언제 올지 모른다"고 답하자 A씨는 "더워서 도시락이 상할까 봐 그냥 이대로 두고 갈 수 없다"고 걱정했습니다.
 
3박4일 동안 지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복도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오후 2시쯤부터는 냉방기기가 전혀 없는 생활을 체감하기 위해 선풍기를 끈 채로 지냈습니다. 이후 다리에 습기가 들러붙는 느낌이 났습니다.
 
10분 뒤에는 창밖에서 쿨링포그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물안개를 맞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서울 최고 온도는 31.6도까지 올랐습니다.  6시 저녁을 먹을 때는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이날은 오후 11시에 취침했는데, 선풍기를 끈 상황이었으므로 반팔 티셔츠를 벗어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선풍기를 틀 정도의 더위라면 옷을 벗어 열기를 식히는 걸로 해소해야 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3박4일 동안 지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11일 오후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12일의 경우, 다른 일정으로 인해 오전에만 쪽방에 머물렀습니다. 서울 내 최고 기온은 31.8도로 전날보다 0.2도 상승했습니다.
 
13일 오전 2시45분에 귀가했을 때 동자동 기온은 이틀 전 새벽과 마찬가지인 22도였습니다. 이날에도 땀이 났으며 더위가 느껴졌습니다.
 
이후 아침에는 거주민이 건강 이상을 호소했습니다. 오전 7시에 2층 거주민 C씨는 "저기요 물 달라"고 외쳤습니다. 40분이 더 지나자 "탈진이 와요"라는 말이 추가됐습니다. 반복되는 외침에 이웃이 오자 C씨는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1층에는 공용 정수기가 있었지만 C씨는 몸이 불편해서 내려가기 어려웠는지 계속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이날 쪽방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을 때 역시 견디기 힘들 정도의 더위가 느껴졌습니다. 서울 지역 최고 온도는 32.8도였습니다. 문 밖에서는 주민들이 "내일은 33도"라며 더위를 걱정하는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쪽방에는 복도로 바람이 지나는 에어컨이 있었으나 기온 35도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직 작동 중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건물 입구 상부에 쿨링포그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이에 거주자들은 실내에 있는 동안에는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고 더위를 해소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방문을 열고 방충망만 치거나 아무 장벽도 없는 채로 지내는 거주자들이 보였습니다. 쪽방에서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방문 자물쇠를 지급해줬지만, 개방이 일상화한 이들은 도난 가능성을 의식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새벽에 복도 불은 꺼지지 않았지만, 이들은 방문을 열고 잠드는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3박4일 동안 지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2층 복도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피서 위해 야외 도는 인근 쪽방 주민들…"은행·편의점 머물기엔 눈치보여"
 
더위에 대한 걱정은 다른 쪽방 주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선풍기로만 버티기 힘들어해 야외로 돌아다니면서도 에어컨은 언감생심으로 여겼습니다. 암환자 안모씨(60대)는 "에어컨이 방에 있는 게 아니고 복도에 있다"며 "건물주가 틀고 싶으면 트는 거고, 틀지 말고 싶으면 마는 거라 (설치)해놨다는 생색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골목에는 쿨링포그가 설치돼있지 않다"며 "쿨링포그를 좀 크게 만들어서 물이 넓게 퍼지게 하든가 여러 군데 많이 만들어놔야지"라고 불평했습니다.
 
정정현(60대)씨는 "선풍기 하나로 버틸만하다"면서도 "선풍기로 안되면 더위를 피해 돌아다니고 편의점에도 들어간다"고 말했습니다.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만난 정모씨(70)는 냉방장치를 쓰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정씨는 "에어컨 설치하면 돈이 얼마인데"라며 "선풍기로 버틸만하지만 바람 오래 쐬면 안 좋다. 은행 등에 들어가기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름을 어떻게 날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정씨는 "돈이 없는데 뭔 걱정이냐"며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수급비 90만원으로 임대료 36만원 내고 생활해야 한다. 이전에 마시던 술도 못 마시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서울시는 쪽방 주민들을 위해 편의점과 은행 지점 등을 '기후동행쉼터'로 지정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쪽방촌 사람들 중에는 주변 시선을 이유로 들어가기를 기피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안씨는 "은행이나 편의점에 10~20분 앉아있으면 눈치 보인다"며 "쪽방 주민들은 그런 데 잘 안 가고 공원에 온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동자동에 있는 새꿈어린이공원에는 대화하거나 소주를 나눠 마시거나 혼자 소일거리 하는 거주민들로 넘쳐났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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