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완제 의약품과 신약 연구개발(R&D) 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제약 바이오 기술 패권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공급망 다각화, 신약 연구개발 투자 강화 등 이미 확보한 제약 주권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최종 법안 제정을 목전에 둔 생물보안법은 자국 우선주의의 단적인 사례인데요. 글로벌 제약 바이오 시장을 흔들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와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제약 주권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2025년 제약 바이오 연구개발 추진 방향을 살펴보면 첨단바이오 등 핵심 원천기술 확보와 의학적 난제 해결을 위한 도전 연구, 디지털 바이오 등 혁신 기반 및 생태계 조성을 통한 성장 지원이 주요 골자입니다. 정부는 첨단바이오 원천기술 확보와 인재 양성, 규제 개선을 지원하고 민간 영역에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제품개발·임상, 제조 혁신 등에 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원상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연구팀 PL은 "지난 3월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발표한 2025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에 따르면, 대내투자 진단으로 정부의 R&D 투자 규모에 비해 혁신적 성과가 미흡하고 성과 정체가 국가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며 "세계 5위 수준의 투자 규모이나 연구의 질적 수준은 10년째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정부 투자는 우수한 연구에 확실히 투자하자는 기조로 효율성 제고에 주력하고, 선도형 R&D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데, 선도형 R&D는 도전과 혁신, 글로벌 혁신, 연구생태계 환경 조성, 전략기술 육성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는 한국형 ARPA-H 프로그램,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등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신약 개발에 성공과 혁신적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금액의 R&D 비용이 필요한데 R&D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 투자펀드 조성, 기술이전, 벤처기업의 IPO, 사업모델 다각화 등의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의 마중물 투자도 꼭 필요하고 지속적인 R&D 혁신과제 발굴과 도전적인 차세대 기술에 투자가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4년 1분기 10대 제약바이오 R&D 현황(그래픽=뉴스토마토)
30대 제약사 중 '9곳' 매출 대비 R&D 비율 10% 넘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적극적인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필수 요소로 부각 되고 있지만,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30대 제약 바이오 기업 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이 10%가 넘는 곳은 9개 기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0대 제약사 중 63%는 전년도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이 감소했습니다.
10대 제약 바이오 기업은 올해 1분기까지 연구개발 비용으로 총 4160억원을 지출했습니다. 제약 바이오 기업 중 연구개발 비용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 한 곳은 셀트리온으로 총 904억원을 썼습니다.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877억원), 대웅제약(567억원), 유한양행(449억원), 한미약품(370억원) 순이었습니다. 대웅제약은 매출액의 19.1%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해 10대 제약 바이오 기업 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한미약품 (13.5%), 셀트리온(12.3%), 녹십자(10.90%), 유한양행(10.1%) 순으로 높았습니다.
30위권 중견 제약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동아에스티가 가장 많은 금액인 336억원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투자했고, 이어 SK바이오팜(287억원), JW중외제약(165억원), 제일약품(120억원), 일양약품 (103억원)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견 제약 바이오 기업 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SK바이오팜(27.33%)이었고, 다음으로 동아에스티(18.7%), 일양약품(13.1%), 유나이티드제약(10.4%) 순으로 높았습니다.
한국바이오협회가 발표한 '2023년 4분기 및 연간 상장 바이오헬스케어기업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매출은 10.3% 감소했지만, 연구개발 투자는 더 늘렸는데요. 의약품 분야에서는 지난해 대기업과 중견·중소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총 3조383억원으로 전년보다 4.3% 증가했지만, 정부 보조금은 905억원에서 660억원으로 27.1% 줄었습니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 수출 부진으로 매출 신장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연구개발 비용을 늘리며 미래 성장 동력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지만, 정부는 보조금 규모를 줄여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입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첨단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정책지원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전략이 깔려있는데, 새로운 혁신 첨단 기술 강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며 "최근에 새로운 모달리티, 접근에 대한 획기적인 방안들을 제시해 기존의 기술개발 한계를 뛰어넘고 보다 고도화되고 첨단화된 기술 양성에 집중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정 원장은 "정부의 목표와 방향성과 달리 정작 지원금은 삭감해 민간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혁신 신약 약가에 대한 우대, 특허 보호 기간에 권리를 강하게 보호해주는 등의 보상체계가 잘 작동되고, 기업의 자발적인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해 조세지원, 임상시험, 허가, 라이선스에 경험이 적은 바이오벤처가 대기업과 연계해 연구개발 성공 확률을 높이고 동반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24년 1분기 중견 제약바이오 R&D 현황(그래픽=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