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농협중앙회가 계열사들로부터 매년 5000억원이 넘는 농업지원사업비(농지비), 이른바 '브랜드 사용료'를 거둬들이고 있는데요. 특히 금융지주 계열의 경우 순익의 무려 20%에 해당되는 규모를 지불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농협은 농지비 부과율 관련 최근 3개년 평균 영업수익(매출)의 '최대 2.5%'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 금융·서비스업종은 '당기순이익'으로 벌어들인 돈을 파악하기 때문에 해당 부과율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금융에서 번 돈으로 중앙회 배불리기
28일 농협중앙회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 및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인 농지비는 총 5434억원으로 집계됩니다. 농업지원사업비는 농협중앙회가 산지유통 활성화 등 회원과 조합원에 대한 지원 및 지도사업의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농업협동조합의 명칭을 사용하는 법인에 대해 명칭 사용에 대한 대가로 부과하는 비용입니다.
농협금융지주 계열사별 '농업지원사업비' 현황. (그래픽=뉴스토마토)
이 중 농협금융지주가 납부한 농지비는 4926억원, 농협경제지주가 납부한 농지비는 474억원으로 ,농협금융의 기여도가 월등하게 큽니다. 특히 농협금융의 농지비는 전년(4502억원)보다 9.42% 늘었습니다.
농지비 지급은 각 계열사에서 농협금융에 사용료를 지급하면 금융지주에서 중앙회로 보내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계열사별로 보면 △농협은행 3306억원 △NH투자증권 572억원 △농협손해보험238억원 △농협캐피탈 12억원 등으로 집계됩니다.
주요 계열사인 농협은행은 △2021년 3156억원 △2022년 2347억원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농지비를 많이 내는 NH투자증권 역시 △20221년 304억원 △2022년 550억원으로 매년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농지비는 영업수익 또는 매출액의 1000분의 25 범위에서 총회에서 정하는 부과율로 책정됩니다. 수치상으로 2.5%로 보면 큰 수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를 당기순이익으로 돌려서 살펴보면 비용 부담은 상당합니다.
김한기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농협중앙회는 일반적인 상장기업이 아니고, 농협조합법에 근거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준을 사용한다고 볼 수 없다"며 "농지비 부과율 기준이 비용을 제하기 전 금액인 매출액에 근거해서 산출되면 눈에 보이는 퍼센테이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실제 매출이 아닌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농협금융지주의 농업지원사업비 부담전 당기순이익은 2조5774억원인데요. 농지비는 당기순이익의 20%에 달하는 비중으로 집계됩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으로부터 받는 과도한 명칭사용료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금융지주 중 계열사로부터 명칭사용료를 받고 있는
신한지주(055550)는 브랜드수수료로 지난해말 695억원을 받았습니다. 농협중앙회(5434억원)는 신한금융의 7.8배 수준입니다.
"권한없는 농협금융…중앙회 지배 과도"
농협금융지주는 타지주사와 달리 상장사가 아닙니다. 농협금융 지분 100%를 농협중앙회가 보유하면서 이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농협금융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인사 개입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올해 초 금융당국에서도 예의주시한 바 있습니다.
특히 농협금융은 배당금과 농업지원사업비 산정에 실질적 권한이 없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배당금은 농협금융지주 이사회가 결정한다고 돼 있지만, 주주총회에서 단일 주주인 농협중앙회 승인이 필요합니다. 농지비 부과율은 농협중앙회 총회에서 결정 후 농협금융에 통보하는 방식입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농협금융 당기순이익 대비 농지비는 2019년 20.8%, 2020년 20.9%, 2021년 15.8%, 2022년 21.9%, 2023년 19.4%이며, 5년 평균 19.8%에 달한다"며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비율까지 합산하면 그 비중이 47.2%에 이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배당과 농지비는 농협중앙회의 과도한 이익추구 수단으로 전락해 있으며 특히 농지비 등이 당초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농협중앙회는 농지비의 세부 지출내역을 공개해 지출목적에 부합하게 사용됐는지 대외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국회에서는 오히려 농지비 부과율을 늘리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지역 표심을 의식한 법안으로 보이는데요. 사실상 포퓰리즘입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전북 정읍시·고창군) 의원은 지난 18일 농협개혁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이 법안에는 농업지원사업비 부과율 상한을 1000분의 25에서 1000분의 50으로 상향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농협금융이 납부해야 하는 농지비는 1조원으로,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40%에 달하게 됩니다. 윤준병 의원실 관계자는 "농협의 근본적인 취지는 농민들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과율을 높이는 쪽이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농협 안팎에서는 농지비 용처가 불분명한 만큼 세부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김한기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농협중앙회는 배당이나 농지비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세부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며 "지금도 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농지비를 사용하고 있는지 불투명한데, 부과율을 높이는 것보다 투명한 내역 산정이 우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