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김성은 기자]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시계가 불투명해지면서, 국내 업체들이 경영 효율화에 방점을 두며 전열을 재정비하는 모양새입니다. 수장을 필두로 한 대대적 인력 쇄신 및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가 하면, 충성 고객 선점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치열한 각축전 구도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각오인데요. 불과 수년 전 비대면 소비 트렌드 확산과 함께 업역을 빠르게 확장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제는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보다 생존이 중요해진 시기인 만큼, 업계의 이 같은 긴축 움직임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장기적 측면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비용 효율화보다는 콘텐츠 차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희망퇴직부터 수장 교체까지…고강도 긴축 경영 돌입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최근 대대적인 고강도 긴축 경영에 돌입한 모습입니다. 먼저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사업부인 롯데온(롯데ON)은 이달 초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난 2020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행하는 희망퇴직인데요. 대상은 근속 3년 이상 직원으로, 퇴직 시 6개월 치 급여를 일시금으로 받거나 유급 휴직 후 퇴사하는 조건입니다. 아울러 롯데온은 최근 총 8명의 부문장 중 3명을 교체하는 임원급 인사 개편에도 나섰습니다. 또 앞서 지난달 1일부로 롯데마트몰 장보기 상품을 2시간 이내에 배송하는 '바로배송' 서비스도 종료한 바 있는데요.
롯데온이 이 같은 초강수를 두는 것은 출범 이래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할 만큼 실적 악화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1분기도 224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두며 전년 동기 대비 24억원 늘었는데요. 업계는 이커머스 업계에 다소 늦게 진입한 롯데온이 좀처럼 시장 점유율을 높이지 못함에 따라, 이 같은 쇄신 작업을 지속해나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신세계그룹도 내부 이커머스 사업에 메스를 댔습니다. 이커머스 양대 계열사인 지마켓과 SSG닷컴의 새 대표를 각각 선임하고 핵심 임원들을 새 얼굴로 채우는 인적 쇄신을 단행한 것인데요. 신세계는 지마켓의 새 대표로 정형권 전 알리바바코리아 총괄을 영입하고, SSG닷컴 신임 대표에는 최훈학 전무를 선임했습니다. 특히 정형권 지마켓 신임 대표는 알리바바코리아 총괄 겸 알리페이 유럽·중동·코리아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인물인데요. 최근 중국 플랫폼들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만큼, 신세계 측은 정 대표가 알리에서 확보한 전문적인 글로벌 이커머스 노하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재무적 투자자(FI) 주도로 매각이 타진되는 상황에 놓인 11번가도 원활한 매각 추진을 위한 경영 효율화 작업에 돌입한 모습입니다. 특히 11번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부터 매년 영업손실을 기록해 왔는데요. 11번가는 서울스케어의 5개 층을 사용해 왔지만, 오는 9월 광명역 역세권에 위치한 대규모 복합단지 오피스 건물인 '광명 유플래닛 타워'로 본사를 이전할 예정입니다. 유플래닛 타워는 같은 면적 기준 월 임대료가 서울스퀘어 대비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 11번가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3월 두 차례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내부 인력 전환 배치를 통한 인력 효율화 작업도 실시했습니다.
한편 쿠팡은 중국 플랫폼의 공습에 물류 센터 및 멤버십 등에 대한 대대적 투자 확대를 공언한 바 있는데요. 다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검색 순위 조작 등을 통한 소비자 기만 행위를 문제 삼으며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함에 따라, 투자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입니다.
비용 절감이 능사 아냐…차별화된 서비스 확보 긴요
업계는 이커머스 업황의 호재보다 악재가 더 많이 누적되는 상황에 인력 및 비용 효율화에 초점을 맞춘 고강도 쇄신 작업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급변하는 시장에서 기업들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비용 절감이 능사가 아니라 서비스 차별화에 주력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조언도 나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사업 성장성을 보고 뛰어들었던 회사들이 현재는 시장 과포화 상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장은 과도기에 진입한데다 내수 침체 흐름까지 더해진 것도 문제다. 파이를 나누는 사업자들은 증가해 경쟁은 치열해졌고, 사업자 간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교수는 "고객이 떠나면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셀러도 떠나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며 "최근 중위권 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에 몰두하고 있는데, 다양한 서비스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는 반면 전망은 어두워지는 데 대해 전반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수뇌부 역시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며 "인력과 조직 개편은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으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라고 본다"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이어 "지금은 선두 업체에 대항하고 점유율 확보를 위해, 할인 쿠폰을 발행하고 각종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고객 유도 정책 시행에 주력하고 있다"며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된 전략은 점차 구축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배송 캠프에서 택배 기사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김성은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