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농협중앙회가 금융업법 맹점을 노리고 금융 계열사의 경영과 인사 전반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중앙회(조합장) 출신 인사를 계열사 비상임이사로 내려 보내는 과정에서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준수하는 법망은 교묘히 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비상임이사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들여다 본 가운데 농협중앙회부터 내려오는 농협금융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입니다.
사외이사 수, 이사회 과반 안 돼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이사회 구성원 중 사외이사 비율이 과반 이상을 차지해야 하지만 농협금융지주의 주요 계열사 이사회는 사외이사 수가 이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사외이사 몫의 자리에 농협조합장 출신 인사들을 비상임이사로 내려보내고 있습니다.
농협금융의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은 이사회 구성원 7명 가운데 사외이사는 조용호·함유근·차경욱 등 3명입니다. 반채운·서석조 등 비상임이사 2명이 포진해 있는데 각각 농협은행과 농협조합장 출신입니다. 반면 시중은행 대표격인 KB국민은행 이사회를 보면 구성원 8명 중 사외이사가 5명에 달합니다. 국민은행은 "사외이사 3인 이상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상법이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등의 법규에도 부합하는 구성요건이다"고 설명했습니다.
농협금융 보험계열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농협생명 이사회는 구성원 9명 가운데 사외이사는 4명에 불과합니다. 이사회에는 농협조합장인 구상봉·한승준과 농협손보 출신인 장은수 등 비상임이사 3명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협손보의 경우 이사회 구성원 9명 중 사외이사 수는 4명으로 과반수가 되지 않습니다. 비상임이사 3명 중 정종학·강도수 등 2명이 농협조합장 출신이고 권택기 전 국회의원 1명입니다.
KB금융(105560)지주의 보험계열사 이사회를 보면 사외이사 수를 과반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KB라이프 이사회를 보면 구성원 7명 가운데 5명이 사외이사입니다. 비상임이사 1명은 이승종 KB금융 전략담당 부사장이 맡고 있습니다. KB손보의 경우 이사회 구성원 6명 가운데 사외이사 수가 4명에 달합니다. 비상임이사 1명은 김재관 KB금융 재무담당 부사장이 맡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민간사 대비 지배구조 수준 미달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12조에 따르면 금융사는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3명 이상 둬야 하고, 사외이사 수는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돼야 합니다. 해당 법률 상에서 말하는 '이사'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비상임이사를 포함합니다. 다만 농협금융 계열사는 농협금융지주의 100% 완전자회사로서 특례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완전자회사 특례는 금융지주사가 지분 100%를 들고 있으면 금융자회사가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완전자회사 특례를 적용받을 경우 금융지주의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가 직접 자회사의 경영업무를 감시해야 합니다. 현재 농협금융 이사회는 구성원 10명 가운데 사외이사 수가 7명입니다. 농협조합장 출신의 박흥식 비상임이사가 1명 있습니다. 농협금융 자회사는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되지만, 이럴 경우 지주사 회장부터 과반이 넘는 사외이사까지 외부출신이 포진한 농협금융에 자회사 경영업무 감시를 맡겨야 합니다.
농협중앙회로서는 금융계열사에 대한 농협금융의 권한이 커질 수록 부담스럽습니다. 최근 최고경영자(CEO) 인선을 두고 중앙회와 지주사가 갈등을 벌인 곳이
NH투자증권(005940)인데요. NH투자증권은 이사회 구성원 8명 가운데 사외이사 수가 5명으로 과반이 넘습니다. NH투자증권은 최대주주는 농협금융지주(56.82%, 2024년 3월 말 기준)입니다.
금감원은 최근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기검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그룹 내부통제 개선을 유도할 방침입니다. 이달 말에는 농협은행 이사회 간담회를 열고 지배구조에 모범관행 이행상황 점검에도 나서기로 했습니다.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를 통해 이들 비상임이사 선임 구조와 역할 등을 면밀히 점검했고, 농협금융 지배구조 전반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금융지주와 비슷한 수준으로 독립성을 갖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금융당국 관계자는 "농협금융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개선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계열사에 비상임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경영 전반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중구 충정로 농협중앙회 본점.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