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연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입니다. 그가 상대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죠.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을 것입니다."(밥 우드워드의 '격노' 26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09년 12월,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각별한 관계라며 한 말입니다. 김 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포함해 세 차례 회동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계속 김 위원장에게 호감을 나타냈고, 북한도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직후 잇달아 김 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트럼프 "핵무기 가진 누군가와 잘 지내는 건 좋은 일"…북한 핵보유 인정·대화 추진?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각)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우리가 (백악관으로) 돌아가면 나는 그와 잘 지낼 것이다. 그 역시 내가 돌아오기를 바랄 것이고, 나를 그리워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틀 뒤 20일 유세에서도 "김정은에게 다른 것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말하곤 했다"며 "그는 핵무기를 사고 만드는 것만을 원하는데, 나는 그에게 '긴장 풀고 좀 느긋하게 있어라(relax, chill). 당신은 충분히 가졌다. 당신은 너무 많은 핵을 가지고 있다. 너무 많이'라고 말했다"고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자신이 집권할 경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김정은, 하노이 회담 결렬 계기로 '대미관계 개선 접고 중·러 밀착' 전략노선 개편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2019년 2월 27~28일)과 판문점 번개 회동(2019년 6월 30일) 이후인, 2019년 8월 5일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각하께서 우리의 관계를 오직 당신에게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저를 주기만 하고 아무런 반대급부도 받지 못하는 바보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그 이후 김 위원장은 대외 전략노선을 전면 개편했는데요. 핵개발 등 국방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남한과 미국에 대한 관계 개선 노력을 접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강화한 것입니다. 그 결과 지난 6월 러시아와 사실상 군사 동맹 관계를 복원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해서 손을 내밀면 김 위원장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문재인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지난 2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해서 바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으로서는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갸우뚱거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북한과 소통할 여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는데, 그 이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한국 정부 노력에 달려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트럼프 손 내밀면, 김정은 갸우뚱할 것"…"김정은 먼저 핵 소량 보유 인정·미군철수 요구 가능성"
아예 통미봉남(通美封南)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요. 문재인정부 국립외교원장 출신인 조병제 전 대사는 지난 15일 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북한 포탄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더 이상 상 북·러가 지금처럼 밀착할 이유도 줄어들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재협상에 나서게 되면 북·미 구도가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때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가 다시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대북 적대감을 유지한 채 미국 일변도의 외교만 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북한이 먼저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트럼프 1기' 초기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북한) 김정은은 다시 브로맨스를 재점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면서 "김정은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대신 내가 핵무기 몇 개만 갖게 해달라. 그러면 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트럼프가 미련 부풀리고 있다" 논평
북한은 당연하게도 일단 선 긋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3일 '조·미 대결의 초침이 멎는가는 미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제목의 논평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수락 연설 발언 등을 나열한 뒤 "조·미(북·미)관계 전망에 대한 미련을 부풀리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내세우면서 국가 간 관계들에도 반영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긍정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하였다"면서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국가의 대외정책과 개인적 감정은 엄연히 갈라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거리를 두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개인적 친분'은 인정한 겁니다.
'논평'은 북한의 대외입장 표명 형식 중 그 수위가 낮은 편이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브로맨스를 강조한 것에 대한 첫 반응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