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4일부터 질문지를 차례로 전달했고 7월18일까지 답변을 요청했습니다. 정책금융기관이 가진 막중한 임무를 각 기관 법에 근거해 원론적으로 살펴보고 본연의 업무에 맞게 일을 하고 있는지, 해당 기관의 조직은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들여다 봤는데요. 질문은 △설립 근거법 △본연의 업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K-정책금융연구소는 이 질문지를 포함해 총 4개의 문서를 '공문' 형태로 각 정책금융기관에 전달했습니다. 여기에는 생태계 평가표와 취지 등 기관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연구소가 정책금융기관 평가를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라, 기존 언론사의 취재 관행과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런 질문은 처음"…"어렵다" 반응 대부분
K-정책금융연구소가 질문지를 보낸 11개 기관의 로고. (그래픽=뉴스토마토)
질문지를 받아든 기관들은 하나같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형식과 관점의 질문 꾸러미에 답한 기관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인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한국벤처투자 3곳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 기관은 질문에 충실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나머지 기관들은 답변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경영진의 판단'이라며 답을 거부했습니다. 기관들과는 다르게 국회와 학계 등에서는 '전에 없던 기사다', '새로운 관점의 깊이 있는 질문이다', '스터디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등의 응원이 뒤따랐습니다.
산업은행의 경우 "국정감사에나 나올 법한 질문들을 한꺼번에 받아본 적이 없었다"면서 "경영진 회의를 통해 질문에 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왔습니다. 무역보험공사는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공공기관 평가 외에 다른 평가에 응하게 되면 언론사 등 각종 기관이 평가하려 들 수 있어 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와의 소통을 이유로 질문지에 답할 수 없었다는 변을 내놓았습니다. 금융위를 소관부처로 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경우 질의서 전달과 답변 과정에서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답변을 하지 않은 다수의 기관은 △'부담스러운 질문이 많았다' △'답변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 △'정책결정하는 윗선에서 답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산하기관이다보니 답변에 한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7월19일에 게재된 'K-정책금융연구소가 중소기업은행에 묻습니다' 지면기사. 답변 없이 질문만 실려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면 갈무리)
기관이 답하기에 곤란한 질문이 다수였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주무부처가 존재하는 산하기관 입장에서 정책결정과 판단에 대한 의견을 내보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외에 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가 금융위원장 인선과 청문회 준비 시기가 맞물리며 언론 대응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금융기관이 언론 등을 대하는 고압적인 태도가 반영됐다는 평도 나옵니다. 한 기관의 내부 관계자는 "충분히 답할 수 있고 답해야 하는 질문이 많았다"며 "경영진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아직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어 "노동조합과 협상에서 보여주는 오만한 태도가 언론 대응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소통했어야"
그럼에도 답변을 보내온 세 기관은 이 같은 질문과 문제 제기에 정면돌파하는가 하면 나름의 성실한 답을 내놨습니다. 기술보증기금의 경우 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형태인 '공사' 전환에 대한 질문에 "타 기관과의 중복성, 원금 및 각종 비용 회수 방안 등을 고려해 신중히 사업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벤처투자는 정부부처가 원하는 투자처와 실제 투자를 결정한 투자처가 상이해 불거지는 갈등에 대한 질문에 "출자 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며 짧고도 분명한 답을 내놨습니다. 중진공의 경우 탄소중립 종합대책 수립과 전담기관 지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 "탄소중립 전환 지원 특별법 신설 및 그 세부사항의 검토는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라며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고,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며, 그간 탄소중립 사업 추진 경험을 기반으로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경영 체제 전환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습니다.
7월26일에 게재된 'K-정책금융연구소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묻습니다' 기사. 질문과 답변이 함께 실려, 총 3개면에 걸쳐 게재됐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면 갈무리)
다수의 기관이 질문에 곤란한 내용이 섞여있다고 해서 아예 답을 하지 않았던 행위는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능한 질문에라도 답하는 등 소통하려는 노력의 부재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매우 안일한 대응이었다고 판단됩니다. 해당 기관은 어떤 재원으로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습니까. 약간의 비약을 더하자면, 기관의 설립과 존재 이유와도 같은 국민을 무시하고 견제에서도 벗어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이번 질문은 세간의 지적과 의혹들에 대해서 기관의 입장과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언론 및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허심탄회하게 답하고 소통했다면 독자 및 국민들에게도 '투명하고 솔직하며 소통하는 공공기관'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정책금융기관은 대규모 자금을 다루고 공급하는 기관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돈을 움직이는 기관에 대한 평가는 절대 가벼울 수 없으며, 정확한 진단을 통해 기관의 운영 전반과 자금 정책 및 집행에 대한 피드백을 얻고, 잘못된 부분은 수정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K-정책금융연구소는 이 같은 연구와 평가를 통해 현재의 정책금융 체계가 향후 급격한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금융 생태계 기능을 재편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 시작인 '정책금융기관에 묻습니다'가 해당 기관이 충실하게 운영되는지를 돌아보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국회가 뉴스만 쫓으며 이슈의 중심에만 서려는 것이 아니라 피감기관이 근거 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검증하는, 품격 높은 질의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K-정책금융연구소는 조만간 이 내용에 대해 11개 정책금융기관과 유튜브 채널 '뉴스토마토 야단법석'을 통해 다시 소통하겠습니다.
이보라·임지윤·김한결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