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신태현 기자] <뉴스토마토>는 쪽방촌 연속 기획보도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쪽방촌 거주자들의 열악한 환경, 주민들이 쪽방을 떠나지 못하는 쪽방촌 생태계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실태 체험에 이어 쪽방촌 주민들의 삶을 지표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쪽방촌 실태 보고서'를 면밀히 분석하는 중입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치로, 서울시가 조사 및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쪽방촌 건물에 공용에어컨을 설치해도 거주자들이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어컨 이용에 불만이 있는 거주자 절반은 전기세 때문에 집주인이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더구나 서울시의 지원사업에도 공용에어컨 보급률은 높지 않습니다.
5일 <뉴스토마토>는 최근 박주민 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을 통해 서울시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거주하고 있는 건물에 설치된 공용에어컨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가량(42.7%)은 ‘이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쪽방촌에 공용에어컨 설치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쪽방 거주자들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공용에어컨 이용에 불만이 있는 거주민 절반은 ‘집주인이 잘 틀어주지 않아서’(50.8%)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에어컨이 방이 아닌 복도에 있어서(20.9%) △방 안으로 냉기가 들어오지 않아서(19.4%) △방문을 열어야 해서 사생활 보호가 어려워서(6.2%) 순으로 불만 이유를 꼽았습니다.
집주인이 공용에어컨을 편하게 이용하도록 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는 응답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조사 결과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49.8%) △더위를 식힐 정도만 사용한다 (32.3%) △공용에어컨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17.6%)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실제 돈의동 쪽방촌 한 거주자는 “8월에는 실내가 40도까지 나가지만, 에어컨은 저녁 잘 때만 튼다”며 “집주인이 전기세 많이 나가니까 낮에는 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쪽방촌은 대부분 창문이 없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여름철 폭염에 특히 취약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복도에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은 그나마 사정이 좀 괜찮습니다. 문제는 공용에어컨 보급률 자체가 높지 않다는 겁니다.
서울 5대 쪽방촌(돈의동·창신동·남대문·동자동·영등포)에 서울시가 지난해까지 보급한 에어컨은 총 171대로, 전체 3357가구 수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보급률이 떨어지는 건 서울시 지원사업에도 쪽방 건물주나 관리인들이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 종로구 쪽방촌 골목에 더위를 식혀주는 ‘쿨링포그’가 가동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건물이 노후화돼 실외기를 설치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도 있지만, 대부분 건물주들의 반대로 에어컨 설치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설치가 돼도 관리를 건물주나 관리인들이 하게 돼 주민들이 쉽게 이용하긴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이 문제로 주민들과 관리인이 다투는 일이 종종 생긴다”며 “같은 건물 내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주민이 있는 층은 에어컨을 좀 틀고, 그렇지 않으면 관리인이 저녁 시간에만 틀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여름철 폭염대책, 임기응변식 대응에 그쳐”
서울시는 쪽방촌 무더위 대책으로 공용에어컨 설치 사업 외에 주민들을 위한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역시 이용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2023년 서울시 실태조사에서 쪽방 거주민 10명 중 7명(76.7%)은 쪽방상담소 내에서 운영 중인 무더위 쉼터를 이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쉼터 가는 것이 귀찮거나 힘들어서’라는 답변이 37.5%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있어 불편해서(18.9%) △쉼터에 가지 않아도 더위를 견딜 수 있어서(15.9%) △무더위 쉼터가 있는 줄 몰라서(12.1%)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무더위 쉼터 이용률이 저조하면서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기후동행쉼터’ 확대 운영에 대한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서울시는 현재 쪽방촌뿐 아니라 무더위 취약계층을 위해 편의점과 은행, 통신사 대리점 등 민간시설 공간을 개방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기후동행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동현 활동가는 “쪽방 골목길에 쿨링포그를 설치하고 무더위 대피소를 추가 지정하는 등 여러 대책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매번 단기적인 대책들에 그치는 게 사실”이라며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장기 계획이 추진돼야 하는데, 이런 갖가지 임기응변식 대응들에 가려져 공공임대주택 재개발 등의 근본 대책들이 가려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안창현·신태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