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열질환에 중대재해 적용…현실은 ‘폭염지침 권고’만

건설사 의무 강화한 폭염지침 법제화 필요
노조 “처벌 강화보다 사고 예방 시급”

입력 : 2024-08-09 오후 5:17:52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온열질환 피해가 속출하면서 정부가 대응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옥외 노동시간이 많은 건설현장에 대한 폭염 대응도 강화했습니다. 최근 검찰이 건설노동자의 열사병 사망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건설사를 기소하는 등 처벌 수위도 높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의 ‘폭염 예방 가이드라인’이 권고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마실 물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여전하다는 겁니다. 처벌 강화만이 아니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강제성 있는 폭염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입니다.
 
고용노동부는 9일 폭염 대비 비상대응체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8월말까지 유지하면서 현장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건설현장과 물류센터 등 폭염 취약 사업장을 중심으로 쿨키트와 그늘막, 이동식 에어컨 등 폭염 예방 물품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5월 1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 데 이어 20억원을 추가한다는 계획입니다.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소속 산업안전감독관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영등포구 내 건설현장에서 장마철과 폭염 대비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노동부는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작업중지 또는 폭염 단계별로 휴식을 부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주의)일 때는 옥외작업 단축 또는 매시간 10분 휴식, 35도 이상(경고)일 때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옥외작업 중지 또는 매시간 15분 휴식을 취하도록 했습니다.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위험)인 단계에서는 긴급조치 작업 이외에 옥외작업을 중지하고, 매시간 15분 휴식을 해야 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휴식 보장과 함께 휴게시설 설치와 음료수 비치는 의무사항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지켜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건설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매해 10명 중 1~2명은 마실 물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박세중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노동부가 폭염기마다 물·그늘·휴식을 3대 수칙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물을 주지 않는 현장을 적발하거나 제재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매해 폭염 대응방안으로 내놓는 내용이 똑같고 이번에 예산을 늘린다고 했는데, 휴게실도 갖추지 못한 열악한 현장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분명한 건 노동부 폭염지침이 의무가 아니라 권고에 불과해 건설사 입장에서 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그만인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온열질환 산재 9건 중 6건이 건설업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신고 현황에 따르면 7일 기준으로 올해 온열질환자는 전날보다 97명이 늘면서 2004명에 달했습니다. 이중 사망자는 19명입니다. 또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9건으로, 건설현장에서 6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7일 전국 48개 지방노동관서장들과 함께 폭염 대비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온열질환 산재 신청 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증가했고, 특히 건설현장 중심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열사병·열탈진 등 온열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해 근로자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온열질환으로 인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더워 죽기 싫다! 건설현장 편의시설 실태 및 폭염지침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근에는 검찰이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2022년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건설사를 기소했습니다. 사건을 맡은 대전지방검찰청은 해당 건설사와 현장소장이 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와 작업중지 등 매뉴얼을 마련하고 반기 1회 이상 점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봤습니다. 이를 중대재해처벌법 위한 협의로 본 겁니다.
 
일각에서는 향후 건설사들이 폭염 대책을 마련하고 안전사고에 대응하는 조치를 강화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옵니다. 하지만 노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고 해서 실제 책임자 처벌로 이어질지, 이에 따라 건설사들이 폭염 대응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행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사고가 나고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에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현장에 투입되는 근로감독관과 적은 예산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건설사들의 의무를 강화해 폭염지침을 법제화하는 게 실질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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