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복권을 둘러싼 3각 충돌이 정국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습니다. 현재 권력과 여야 미래 권력의 셈법이 저마다 복잡한데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는 '복권을 요청했다'고 뒤늦게 밝혔습니다. '고유 권한'을 앞세운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 의결 후, 김 전 지사 복권을 재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5주기 추도식이 열린 지난달 5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면충돌 피했지만…윤·한, 연일 '살얼음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측은 김 전 지사 복권에 공공연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에 '복권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고도 밝혔는데요. 최종 판단은 대통령이 내리지만, 여당에도 민심을 전달할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명분 부족'과 '당원·지지층 반발'을 들었습니다.
사실상 한 대표의 입장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대는 표하되, 대통령실과의 정면충돌은 피한다는 전략입니다. '윤·한 갈등' 의식한 듯 국민의힘은 1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도 열지 않았는데요.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계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사면 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과거 여권 인사가 사면된 만큼 균형을 맞춰야 한다"이라는 논리입니다.
"지난 2022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 대표가 김 전 지사 사면·복권을 하려 했으나, 총선 영향을 고려해 사면만 먼저 하고 복권은 미뤘다"는 책임론도 나옵니다. 한 대표 측은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김 전 지사의 사면·복권에 반대했다고도 강조합니다.
한 대표의 '복권 반대'는 보수 진영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 외에 유력 대선주자가 생긴다는 점도 달갑지 않은데요. 한 대표로서는 김 전 지사가 더 껄끄러운 상대일 수 있습니다. 김 전 지사는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직계'로 꼽히는 데다, 강한 비토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권 내부 '이재명 일극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인물로도 거론됩니다.
한 대표로서는 잃을 게 없습니다. 김 전 지사 복권에 대해 보수 지지층일수록 반대가 더 극심합니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 복권을 강행하면,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며 보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습니다. 복권이 불발되면,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새가 됩니다.
앞서 지난달 당대표 경선에선 한 대표에게 "진중권·김경율 등 좌파 출신 인사들과 소통한다"는 '강남좌파설'이 불거졌는데요. 한 대표가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운 걸 두고서도 보수 주류에선 한 대표의 '색깔'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번엔 정반대 상황입니다.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는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글이 연달아 게시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4선 중진 의원들도 이날 한 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 '김 전 지사 복권이 적절하지 않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고 전해집니다. 김 전 지사의 복권이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주도권 싸움'으로 가는 양상입니다.
겉으론 '환영'…진실공방에 속내 '복잡'
불똥은 민주당으로도 튀었습니다. 김경수 전 지사 복권은 '야권 분열'을 노린 행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인데요. 이를 의식한 듯 이재명 전 대표는 지난 10일 전당대회 경기 순회경선이 끝난 후 "윤 대통령에게 여러 루트를 통해 김 전 지사 복권을 요청했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부탁 받은 적 없다"는 여권 관계자의 반박이 나오면서 '진실 공방'이 전개됐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재반박하기에 이르렀는데요. 박 직무대행은 지난 11일 대전 순회경선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면·복권 회의에 앞서 대통령실이 '민주당은 누구를 사면·복권하면 좋겠냐'고 물었고, 김 전 지사와 정경심 전 교수를 제안했다"고 언급했습니다.
민주당 주류는 김 전 지사 등판을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합니다. 복권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김 전 지사는 오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통령 선거 출마가 가능합니다. 야권 내부 권력구도는 출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 전 지사는 이재명 전 대표의 유력 경쟁자로서, 아직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전 대표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표에 비해 '팬덤'은 약하지만, 대중적 지지층이 존재하고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친문·비명(비이재명)계의 선두 주자로 세력화할 개연성이 큽니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재인의 복심'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민주당 소속으로 유일하게 경남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이력을 갖춘 김 전 지사는 비명계를 규합하는 역할을 맡기에 충분하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