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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산업인 전기차가 캐즘(수요 둔화)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자 배터리업계도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 잦은 전기차 화재로 인해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까지 커지면서 캐즘이 더욱 심화되는 모양새다. 이에 <IB토마토>는 배터리업계의 업황 악화 원인과 대응전략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배터리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도 제각각 다른 투자 및 재무전략을 취하고 있다. 수요 둔화로 인해 재고가 쌓이면서도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도 있고, 업황 악화에 따라 투자를 줄이고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기업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배터리 업계에 ‘다윈의 바다(수요 회복 후 경쟁기)’ 시기가 오면 각 사의 생산능력(CAPA)이 향후 배터리 시장에서의 성공 기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각사)
투자 속도조절·리스크 관리 집중하는 LG엔솔-SK온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은 기존의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철회하는 등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SK온은 제품 양산 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는 포드와 설립한 미국 합작법인(JV) 블루오벌SK도 포드의 전기차 CAPA 축소 움직임을 고려해 수요 변화에 따라 제품 생산 규모를 유동적으로 조절할 계획이다. SK온은 또 캐즘으로 떨어진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불요불급한 비용을 없애는 원가 절감 활동에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에는 구조조정을 통해 임원 약 30%를 감축하고 일부는 SK이노베이션으로 재배치했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7.6% 감소한 LG엔솔은 투자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필수적인 투자만 집행해 과잉 투자를 방지하고 내실을 다지려는 전략이다. LG엔솔은 GM과 합작 3공장 및 애리조나 ESS(에너지저장장치)용 공장 건설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북미에서만 미시간 홀랜드 공장 증설, 현대차·혼다·스텔란티스 와의 JV를 추진 중이다. 한국 오창과 폴란드, 중국 난징 공장도 증설 계획이 있다. 업계에서는 LG엔솔이 공장 건설 중단 등의 조치를 향후 다른 생산라인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완성차 기업들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납품하는 배터리 양도 줄어들게 되는데 기존에 계획된 CAPA대로 생산하면 재고가 남아돌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이 때문에 고객사 주문에 맞춰 유동적으로 설비투자 계획을 조정하고 CAPA를 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 지속하는 삼성SDI
반면
삼성SDI(006400)는 업황 악화로 인해 재고가 쌓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며 미래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LG엔솔과 SK온이 투자 속도조절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삼성SDI의 올 상반기 재고자산 총액은 지난해 상반기(3조2358억원) 대비 12.4%포인트 늘어난 3조6381억원을 기록했다.
재고자산의 가치도 떨어져 손해를 입고 있다. 삼성SDI는 올 상반기 재고자산평가손실 충당금으로 1093억원을 인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511억원)보다 두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재고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 평가손실 충당금을 인식하는데, 이는 매출원가에 반영돼 회사의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삼성SDI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33.7% 감소한 5476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리튬 등 원재료 가격이 떨어져 '역래깅' 효과가 나타난 것도 충당금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역래깅은 원재료를 살 때는 비싸게 구매했지만,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때는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에 연동된 제품 가격도 낮아져 팔았을 때 오히려 손해를 입는 현상을 뜻한다.
기업이 재고를 얼마나 잘 팔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재고자산회전율도 떨어졌다. 재고자산회전율이 감소한다는 것은 재고가 이익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상반기 5.7회였던 삼성SDI의 재고자산회전율은 올 상반기 4.4회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삼성SDI는 전기차와 ESS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결국 올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는 전략을 고수 중이다. 회사는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2배 수준(약 3조원)의 투자를 집행했다. 지난해 말 기준 100GWh 수준이었던 CAPA를 2026년까지 200GWh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현재 유럽과 북미 등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CAPA를 확충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특히 하반기 스텔란티스와의 JV 스타플러스에너지(SPE)를 설립해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2개 공장을 짓고 있다. 2개 공장 중 하나는 조기 가동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하반기 고부가가치 배터리인 P6의 신규 수주를 확대했으며,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및 리튬인산철(LEP) 배터리 양산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안정적 운영 VS 미래 시장 선점…누가 승자될지 관심
삼성SDI가 고수하는 공격적인 투자 전략은 시장이 회복되는 시점에 대규모 CAPA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캐즘 이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경우, 이미 확충된 CAPA와 선진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선점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만약 캐즘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경우 이러한 전략이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LG엔솔과 SK온의 신중한 투자 전략은 캐즘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안정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효율성 강화와 비용 절감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은 장기적인 시장 침체에 대비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캐즘 이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경우 이들 기업이 감당해야 할 CAPA가 충분히 준비되지 못할 위험도 존재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의 캐즘이 길게는 2~3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이 시기 이후 급격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캐즘 구간에서 각 기업이 선택한 전략이 '다윈의 바다'로 비유되는 치열한 경쟁 시기에서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는 분석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위원은 "현재 리튬 메탈, 이온에서부터 전고체까지 여러 종류의 배터리가 개발 중이며 향후 어떤 게 표준화될지 아직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면 캐즘이라는 시기를 무조건 겪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시기에 기술혁신과 CAPA 확장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수요가 넘치는 다윈의 바다가 도래했을 때 시장을 선점하고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