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미국, 유럽이 중국을 배제하는 자국 중심주의가 강화되며 'K배터리'의 공급망 리스크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배터리 핵심 원재료의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인데요. 특히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사실상 '배터리 올인'이라 전기차 시장 침체에 따른 타격이 큽니다. 이에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를 통해 핵심 소재의 '탈중국'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100%로, 배터리·배터리 부품·주요 광물 관세는 7.5%에서 25%로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핵심 광물 생산량 비중.(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맞붙는 광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미국이 지난 5월 전기차 배터리에 중국산 흑연이 있으면 세액공제를 주지 않는 제재를 2년간 유예했지만 다른 중국산 광물 금지는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광물 수급에는 장기 투자가 필요한 만큼 2년의 시간도 충분치 않죠.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당장 내년부터 배터리 생산에 들어가는 흑연 외 광물은 중국산을 탈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가 지급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죠.
리튬, 흑연 등 2차전지 주요 소재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광물에 대한 의존도는 중국에 편중돼 있습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코발트 68%, 리튬 72%, 니켈 34%, 흑연 70% 등 제련단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핵심광물들의 제련 및 셀 제조 의존도는 70% 이상이 중국에 편중돼 있어 실질적인 2차전지 광물 공급망 주도권은 중국이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포스코퓨처엠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에서 제조설비를 가동하고 있는 모습.(사진=포스코퓨처엠)
우리나라는 음극재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음극재는 리튬이온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중 하나입니다.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면서 외부 회로를 통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며 배터리 충전 속도와 수명을 좌우합니다. 음극재 원료로는 리튬이온 저장 능력이 뛰어난 흑연이 쓰이고 있습니다.
흑연은 전세계의 65.4%가 중국에서 생산될 뿐 아니라 매장량도 15.8%로 튀르키예 27.3%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나뉘는데요. 우리나라는 지난해 천연흑연의 97.2%, 인조흑연의 95.3%를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미국이 흑연만 제재를 2년간 유예하며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이 시간을 벌었지만 2026년 말까지는 대체 공급선을 뚫어야 합니다.
2차전지 관련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은 저마다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SK온은 미국의 흑연 채굴업체인 웨스트워터와 공급계약을 맺어 2027년부터 5년간 최대 3만4000톤의 흑연을 확보했고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은 호주 광산 업체인 시라와 협력해 모잠비크에서 채굴한 흑연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포스코퓨처엠(003670)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음극재의 핵심재료인 인조흑연도 국내 유일하게 포항 공장에서 만들어내고 있죠.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3월 시라로부터 천연흑연을 대량으로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연간 최대 6만톤의 천연흑연이 도입됩니다. 포스코그룹 차원에서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와 탄자니아에서 각각 광산 공동 투자계약과 흑연 장기 공급계약을 맺어 천연흑연을 조달할 계획입니다.
탈중국 흑연 공급망 구축 관건은 비용입니다. 중국산 흑연은 원료, 물류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비용이 낮습니다. 중국 대신 멀리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 흑연을 조달하려면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죠. 인조흑연의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과 더욱 비교됩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책금융 등을 통해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낮은 전기료, 저리 대출 등 국가적인 지원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와 경쟁하려면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우선 정부는 국내 배터리·자동차 업계의 공급망 자립화를 위해 올해 9조7000억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합니다. 지난 6월부터는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 시행됐습니다. 핵심 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선을 제3국으로 다변화하거나 국내에 제조역량 확충 또는 수입 대체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를 선도사업자로 지정해 혜택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속에 들어가는 핵심적인 부품들이 중국산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종속도가 높아지고 있어 우려가 크다"며 "가격경쟁력에 최근에는 품질까지 우수해지면서 국내 완성차와 배터리업계도 품질 및 기술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