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지부진 공모주에 베팅한 이유는

HD현대마린·시프트업·에이피알에 6500억 투자

입력 : 2024-09-03 오후 3:43:14
 
 
[뉴스토마토 신대성 기자]올해 기업공개(IPO)를 통해 신규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해당 기업 주식을 대거 매입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고평가 논란에 휩싸인 공모주들이 순매수 상위권에 포진해 있어 국민 노후자금 활용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연기금 주요 순매수 종목.(사진=뉴스토마토)
 
뻥튀기 공모주, 연기금 풀베팅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장된 시프트업, HD현대(267250)마린솔루션, 에이피알 등은 상장 당시 뻥튀기된 주가로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이들 주식을 대량 매수하며, 거품이 낀 주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최근 연기금의 순매수 상위 종목을 보면 이들 고평가 논란 종목들이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연기금은 HD현대마린솔루션을 2857억원, 시프트업 2138억원, 에이피알 1512억원 어치를 사들였습니다. 순매수 1위 셀트리온(068270)(5255억원)뒤를 이어 HD현대마린솔루션과 시프트업이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했고, 에이피알은 9위에 위치 했습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 7월 HD현대마린솔루션의 지분을 단순투자 목적으로 장내매수를 통해 기존 4.81%에서 6.23%로 늘렸습니다. 에이피알의 경우 4월 4.85%에서 6월 말 11.20%까지 지분을 늘렸다가, 최근 9.71%로 줄였습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공모주뿐만 아니라 대형주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는데, 어쨌든 수익을 내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라며 "특정 공모주를 집중적으로 매수했다고 해서 관련 입장을 밝히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증권업계에선 연기금 내부 규정에 따라 기계적인 매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만약 연금자금이 공모주 펀드에 들어갔으면 최근 매수 종목에 공모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면서 "연금이 해당 공모주들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가지고 산 것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다운 LS증권 연구원은 "연기금의 매매는 인덱스 추종과 액티브 운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서 "인덱스 추종의 경우, 기계적인 매매가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코스피200 등의 지수에 포함된 종목들의 비중을 맞추기 위해 이루어지는 매매입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인덱스 비중을 맞추기 위한 매매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입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기금들이 투자위원회를 운영해서 종목 선정과 관련된 의사결정 기준들을 다 가지고 있다"면서 "그 기준들이 정확히 지켜진 상태에서 매수한 것이라면 문제될 거는 없다"고 했습니다. 
 
주가 지지부진…부적절한 공모가 산정
 
연금 측에서 수익을 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투자한 기업의 상장 후 주가를 보면 지지부진합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상장 후 고점 대비 47% 빠진 11만원대에서 등락 중이고, 시프트업은 29% 하락한 6만3000원대, 에이피알은 41% 내린 27만5000원대를 기록 중입니다. 다만 공모가보다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HD현대마린솔루션 주가는 공모가(8만3400원)보다 28% 가량 높은 편이고, 시프트업과 에이피알은 각각 4~5% 정도 높습니다. 
 
또한 공모 당시 고평가에 휩싸였던 만큼 해당 종목들이 현재 투자할 만한 상황인지는 의문입니다. 시프트업의 경우 공모가 산정 시 주가수익비율(PER)을 39.25배로 책정하며 비교 그룹으로 일본의 스퀘어에닉스, 사이버에이전트, 가도카와를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비교 기업들은 국내 업체가 아닐 뿐만 아니라, 매출 규모에서 차이가 크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HD현대마린솔루션도 비교 기업의 적절성에 대한 비판을 받았고, 에이피알은 상장 후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고평가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연기금의 '묻지마 매수', 노후자금 위협
 
연기금이라는 공적자금(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우체국보험기금 등)이 고평가 논란에 휩싸인 공모주를 '묻지마 매수'하며 떠받치는 것은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각에선 연기금을 '눈먼 돈'으로 지적하며, IPO 전문가도 부족해 상장 직후 주가가 하락하면 매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경준 혁신투자자문 대표는 "연기금 내부에는 공모주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기계적인 매수 경향이 뚜렷하다"면서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할 때 매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기업의 가치보다는 단순히 지수 편입 여부나 시가총액 크기에 따라 매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연기금은 수백조원의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하지만, 이같은 투자 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은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면서, 코스피 200 편입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미리 매수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민연금의 투자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 현황과 개혁과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8.20.(사진=뉴시스)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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