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만 문제 아니다…사적연금 대개혁 시급

땜질식 변경 반복…전문가도 못 외워
자산운용, 방치하거나 투기적이거나
연금 제도·규정 통합정비 필요

입력 : 2024-09-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한 각계의 논쟁에 온 세상의 눈이 쏠려있는 한편으로 연금저축,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도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적립금은 해마다 불어나는데 제도와 규정은 땜질식 처방이 되풀이된 끝에 전문가도 못 외울 정도로 복잡해졌습니다. 적립금 운용은 방치와 투기, 극단을 달립니다. 사적연금의 대대적인 정비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20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과 연금저축,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을 포함한 국내 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1788조원을 기록했습니다. 자산시장 분위기만 받쳐준다면 연말엔 20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특히 사적연금 가입자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등 성장세가 가팔라 전체 적립금 증가에 큰 역할을 하는 중입니다. 국민연금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증가세가 점차 둔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사적연금의 경우 인구구조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의 반작용,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마케팅 등에 힘입어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사적연금 시장은 갈수록 팽창하고 있으나 내용은 그야말로 중구난방, 총체적 난국입니다. 제도는 여러 차례 개정 끝에 누더기가 돼 개인이 익혀 활용하기에 벅찰 만큼 복잡하고, 적립금 운용은 방치돼 있거나 투기적인 매매가 성행해 노후를 준비하는 자산이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땜질식 개편 반복…연금, 알고 하기 어려워
 
우선 연금 관련 제도부터 복잡합니다.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서 각각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제도와 규정, 한도와 지원 범위 등 차이가 있어 이를 숙지하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해외 사례와도 다릅니다. 
 
현행 연금제도는 3층 보장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1층의 국민연금은 국가가 직접 징수·운용하지만 2층 보장을 맡은 퇴직연금과 3층의 개인연금은 각각 기업과 개인이 관리합니다. 
 
이 중 현재 판매 중인 연금저축계좌는 2013년부터는 도입됐습니다. 연간 납입한도가 1800만원으로 늘었으나 소득공제가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연금저축도 판매기관에 따라 연금저축보험. 연금저축펀드와 연금저축계좌, 연금저축신탁으로 나뉩니다. 연금저축보험은 보험업법의 규제를 받고, 연금저축펀드와 신탁은 자본시장법으로 관리합니다. 이 가운데 은행이 주로 취급했던 연금저축신탁은 2018년 판매가 중단됐습니다. 
 
보험회사의 연금은 한 발 더 들어갑니다. 세액공제가 가능한 연금저축보험인지, 공제 혜택 없이 비과세만 해주는 세제비적격 연금보험인지부터 헷갈립니다. 
 
2층 보장을 맡은 퇴직연금의 경우 운용 방식에 따라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누고 운용지시 주체를 구분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은행 예금에 돈을 맡겨뒀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개인형 퇴직연금 IRP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양상이 복잡해졌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 비중은 전체 퇴직연금의 20% 남짓이지만 퇴직연금 계약 건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관심은 뜨겁습니다. 개인형 IRP는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 퇴직금 적립금의 세제 혜택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든 상품이지만 지금은 연금저축계좌처럼 개인이 활용 가능한 또 하나의 세제혜택 계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금융회사들도 판매실적을 높이기 위해 그렇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계좌와 상품이 납입한도, 세제지원 방식과 규모 등을 계속해서 땜질해 연금 전문가가 아닌 이상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고르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가입 후 방치 또는 단타 ‘극단적’
 
사적연금 수익률이 높지 않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은행예금보단 낫다고 하지만 사실 불안합니다. 계좌만 만들어 놓고 방치된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마땅히 고를 만한 선택지가 부족합니다.
 
또한 연금보험이 아니라도 연금저축계좌와 퇴직연금 특히 개인형 IRP에 담을 수 있는 상품의 종류가 달라 이걸 익히는 데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개인이 노후자산을 연금상품으로 준비한다는 성격은 같은데 각각의 계좌에 담을 수 있는 상품이 제한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위험이 사실상 ‘0’인 은행 예금을 퇴직연금에선 할 수 있는데 연금저축계좌엔 편입할 수 없습니다. 
 
제도상으론 열려 있어도 정작 금융회사 단계에서 가부가 나뉘는 경우도 많습니다. 채권을 예로 들면 판매회사 돈벌이에 수월한 장외채권 중심이어서 가입자의 선택권이 제한됩니다. 
 
방치 계좌의 반대편엔 투기적 매매가 성행합니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이용해 주식 개별종목 거래하듯 공격적인 매매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운용사들은 경쟁적으로 투자위험도가 높은 ETF 신상품을 쏟아낼 뿐 연금저축계좌에서 이를 공격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방치합니다. 
 
이런 투자에 성공해 연금자산을 불릴 가입자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가난한 노후를 피하기 위해 시작한 연금 운용이 가난을 부추기는 데 일조할 뿐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연금저축·퇴직연금·ISA, 통합 정비 시급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적극 나서야 합니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를 활용하는 가입자는 많지 않습니다. 타깃트레이딩펀드(TDF) 판매와 ETF 신상품 출시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연금자산 운용의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개인이 스스로 활용하기에 벅찬 연금저축계좌, 퇴직연금 등의 제도와 세제지원 등을 단순하고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각각으로 적용하는 한도와 지원 등을 일괄 조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기엔 세제혜택 계좌로 많이 활용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도 포함돼야 합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 때문이든, 정부의 세제지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자산관리 차원이든, 사적연금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 돈으로 노후에 얼마나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지금의 행태로는 매우 불안합니다.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뉴스토마토>는 오는 25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 금투센터 3층 불스홀에서 2024연금포럼을 개최합니다. ‘중구난방 사적연금 대수술이 필요하다’ 주제로 연금제도 개편 방안과 자산 배분, 모델포트폴리오(MP) 등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으므로 이번 포럼에서 방치된 연금계좌를 깨울 방법을 함께 고민하길 바랍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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