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게임 사전 검열을 정당화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17일 밝혔습니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태건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에게 현행법상 게임 검열의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17일 오전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립국어원,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서태건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진 의원은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에 따르면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물'은 제작 또는 반입을 금지한다"며 "'지나치게 묘사' 또는 '범죄심리', '모방심리'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고 질의했습니다.
서 위원장은 "어떻게 보면 판단의 영역이라 계량화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진 의원은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에 대한 기준 또한 명확하지 않다"며 "헌법에서 규정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일반인은 물론 게임 산업 관련자들이 봐도 명확하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 이 조항이 명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서 위원장은 "우려하시는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그래서 저희 위원회가 합의제 위원회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관위는 게임이 상호작용 콘텐츠라는 점을 검열의 근거로 들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자료는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진 의원은 "이 기준들을 다른 제작물에 적용할 때, 영화 '범죄도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DP'가 유통 금지될 것"이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지나친 음란 묘사로 유통이 금지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2022년도 기준으로 게임은 콘텐츠 산업 전체 수출의 68%이고 약 90억 달러"라며 "K게임만 과도한 제한을 받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서 위원장은 "예"라고 답했습니다.
진 의원은 이어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저희 의원실에서 대면보고를 한 결과를 보면, 게임의 경우 다른 콘텐츠처럼 시청만 하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을 해서 더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혹시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서 위원장은 "상호작용이 게임의 특성이기는 하다"면서도 "그런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17일 오전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립국어원,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서태건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게임 검열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을 어겼다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진 의원은 "헌법 21조 2항은 국가의 검열 금지 원칙을 규정한다"고 짚었는데요. 해당 조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진 의원은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판례를 통해서 이미 행정 주체가 유통을 전제로 한 등급 분류 또는 등급 부여 제도 안에서 심의받지 않은 제작물의 유통은 제한할 수 있으나, 유통 전 사전 심의를 통해 유통 자체를 막거나 제한하는 건 위헌이라고 판시돼 있다"며 "이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현행 게임물 등급 분류 제도 또한 위헌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서 위원장은 "헌법소원 청구가 돼 있는 상태여서 헌재의 판단을 따르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앞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산업법을 근거로 성인 대상으로 제작된 성인용 게임, 해외에선 청소년 이용 등급인 게임 등에 등급을 매기지 않는 식으로 유통을 막아 왔습니다. 이에 최근 21만750명이 해당 조항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진 의원은 "21만 명이라는 역대 최대 인원이 서명으로 헌법소원까지 낸 걸 보면, 법령에 대한 적극적인 개정도 필요하고 그사이에 정책 변경도 필요하다"며 질의를 마쳤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