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협상이 난항을 보입니다. 미국산 에탄(가스) 공동구매를 추진했던 LG화학, 롯데케미칼, HD현대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가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장 전체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에탄 관련 시설을 신규 투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가운데 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주요 화학제품 시황 부진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NCC 적자 탓에 가동률 낮추기로
18일 에탄 공동구매 협상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합의가 쉽지 않다”며 “(화학원료로) LPG(액화석유가스)를 써도 적자를 보는 형편인데 에탄을 들여와 신규 라인 투자를 할 여력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또 “롯데케미칼의 경우 미국에 에탄크래커(ECC, 에탄 분해 에틸렌 생산)가 있어 중복투자되는 부담이 있다”고 했습니다.
에탄을 공동구매하면 원료값 부담을 낮출 수 있습니다. 현재 NCC(납사크래커, 납사 분해 에틸렌 생산)의 수익성이 저조해 정부가 중재하는 산업 구조조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방안 중 하나로 나왔습니다. 4사가 먼저 합의하고 필요한 지원을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었습니다. NCC를 일부 변경해 ECC로 변경하는 방법인데 이를 위한 투자비가 소요됩니다. 당초 LG화학 등은 NCC 부분 매각을 추진했다가 적합한 매수인이 없어 대안을 찾던 중입니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에틸렌의 저조한 수익성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관련 해법 마련에 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최근 NCC 업체들은 채산성 악화로 가동률을 낮추는 방안도 재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NCC는 SK지오센트릭, 롯데케미칼, LG화학, 여천NCC, 한화토탈, 대한유화가 보유 중입니다. 에틸렌-납사 스프레드(마진)는 9월 톤당 141달러를 기록했습니다. 7월(105달러)과 8월(123달러)에 비해서는 오름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흑자를 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NCC가 흑자를 냈던 때는 스프레드가 300달러선을 넘었던 2021년까지였습니다. 전년동월에 비해서는 7월과 8월 각각 170달러, 164달러로 올해 같은달 더 부진했으나 9월에는 작년 138달러보다 소폭 오른 수치입니다.
에틸렌으로 만드는 폴리머(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시황도 부진합니다. 중국 내 증설 부담에다 수요 침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SK지오센트릭, 효성화학, 롯데케미칼, GS칼텍스, LG화학, 한화토탈, 대한유화, 폴리미래 등이 만드는 폴리프로필렌(PP)-납사 스프레드는 9월 톤당 400달러 수준입니다. 또 SK지오센트릭, 한화솔루션,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이 만드는 저밀도폴리에틸렌(LDPE)-납사 스프레드는 9월 57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폴리머 제조사들은 톤당 800달러를 넘었던 2022년까지만 영업흑자를 봤었습니다.
화학제품 제조시설이 들어서 있는 여수국가산단. 사진=뉴시스
기대에 못미친 중국 경기부양책
자동차, 전자제품 등에 쓰이며 업황의 척도가 됐던 아크릴로나이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ABS)도 호황기였던 2021년 납사 스프레드가 1600~2000달러였던 데 비해 근래 1000달러대 초반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다만 작년 9월 929달러로 1000달러도 못넘었던 데 비해선 올 9월 1199달러까지 회복했습니다. 이 제품은 LG화학, 롯데첨단소재, 금호석유화학, 한국이네오스스티롤루션이 만듭니다.
에탄 공동구매는 이런 석유화학제품의 채산성을 높이려는 시도입니다. 미국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역대급으로 낮아져 에틸렌의 원료인 에탄 가격 경제성도 높아졌습니다. EIA에 따르면 미국 천연가스 가격은 9월 백만 영국열량 단위(MMBtu)당 2.28달러로 3월 1.49달러 저점보단 올랐지만 2022년 8월 8.81달러 고점에 비해 훨씬 저렴합니다.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은 경기부진의 늪에 빠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채권 발행 확대 등의 재정부양책을 지난 8일 발표했지만 대규모 부양책을 기대했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국제유가는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 전쟁 불안에도 중국 등 수요 부진 탓에 70달러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내년 세계 원유 공급과잉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가격 약세 원인이 팽배합니다.
원유값이 낮아지면 석유화학사는 원가 부담을 덜지만 전방 수요 부진과 중국-중동발 경쟁심화로 스프레드가 개선되지 않는 형편입니다. 당장 국제유가가 오르면 적어도 SK, GS,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은 단기적으로 재고평가이익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석유공사 정보분석팀은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인프라를 공격해 이란산 원유 공급이 중단되면 국제유가(브렌트유)는 90달러대로 급등할 수 있다”면서도 “이란산 원유 공급이 중단돼도 OPEC+는 이러한 공급 충격을 메울 충분한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