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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1일 18:38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최근 SK온의 1조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서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액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를 인수키로 하면서 충성도를 과시했다. 이전 영구채 발행까지 합하면 한국투자증권은 SK온에만 7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한다. SK온의 기업공개(IPO)를 염두엔 둔 행보지만 SK그룹이 전기차 수요 정체와 과도한 사업확대에 따른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SK를 향한 한국투자증권의 헌신이 언제쯤 빛을 보게 될지 주목된다.
한투, SK 재무 리스크 껴안고 자금 투입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온의 총 1803만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마무리됐다. 전체 발행주식 수의 3.7% 규모로 신주 발행가격은 주당 5만5459원이다. 지난 15일 납입 완료됐고 16일 신주가 교부됐다.
이번 SK온의 유상증자는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신주를 매각해 진행됐다. PRS는 신주를 재매입하는 시기에 주식가치가 기준가격보다 높거나, 낮으면 그 차익을 물어주거나 회수하는 구조다. 향후 투자자가 SK온 주식을 처분할 때 가격이 신주 인수가격보다 낮으면 SK온이 차액을 보전해준다. 반대로 주가가 높으면 상승분 만큼을 금융회사가 SK온에 지급한다.
총 규모는 1조원으로 한국투자증권, 신한은행, 신한투자증권, KB증권이 SK온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들 중 가장 많은 액수를 인수한 곳은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이온포스트에서 1500억원을 인수하고, 자체적으로도 2500억원을 투자했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SPC법인 키스이제이제칠차와 완전 자회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통해서 지난 7월 발행을 마무리한 5000억원 규모 사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에서도 가장 많은 2550억원 규모를 인수했다. 증권사가 SK온의 재무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라 SK그룹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발행 당시 SK온은 이번에 발행 영구채 인수 조건으로 ‘가급적 직접 보유할 것'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을 넘어 사실상 자금 수혈을 요청한 셈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지만 한국투자증권은 이를 받아들여 최대 인수처가 됐다.
전기차 캐즘에 자금 수혈 절실한 SK
한국투자증권과 SK그룹의 끈끈한 관계는 올해 초 진행된 그룹의 자금 조달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SK그룹의 캐시카우인 SK하이닉스가 조 단위대 적자를 기록하고 전기차 시장 불황으로 SK온의 흑자전환도 지연되자 SK그룹은 주요 계열사를 동원해 자금 조달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IB토마토>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SK그룹이 공모채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총 6조300억원이다. 이중 가장 많은 액수를 주관한 곳은 전 계열사 SK증권이고, 한국투자증권이 뒤를 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SK그룹의 회사채 발행에서 총1조5805억원 규모를 주관했고, 총 1조560억원의 채권을 인수했다. 발행 채권은 완판에 성공했다. 일반적인 대기업의 자금 조달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증권업계에선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SK그룹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란 분석이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이 노리는 가장 큰 딜은 SK온의 기업공개(IPO) 주관이다. 대규모 유상증자 참여도 향후 IPO를 염두에 둔 행보로 성공적인 IPO 주관 이후 지분 보유 관계까지 겹쳐진다면 한국투자증권 투자금융(IB)에 있어선 SK라는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SK 측에서도 금융권 도움이 절실했다는 점이 맞아떨어졌다.
SK온은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을 물적 분할해 설립됐다. 지난해 6조7869억원에 이어 올해 7조5000억원을 설비 구축에 투입하면서 올 상반기 기준 SK온 곳간에는 현금성 자산이 4066억원만 남았다.
SK 향한 진심 '한투'…SK온 정상화 관건
한국투자증권의 헌신적인 투자가 열매를 맺으려면 SK온의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SK그룹이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진=SK온)
SK이노베이션은 SK E&S 합병에서 지난해 6조원이었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2030년 2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업부문 별 전망을 따지면 배터리 사업에서 10조3000억원, 석유·화학 등 사업에서 4조원, 액화천연가스(LNG)등 에너지 사업에서 2조8000억원, 합병 시너지로 2조2000억원 이상의 EBITDA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SK그룹의 정상화는 SK온의 흑자전환이 관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은 SK온의 지원 차원이었다.
SK온은 2026년 말을 목표로 추진 중인 기업공개(IPO)를 통해 기업가치를 증명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앞선 유상증자에서 평가받은 SK온의 기업가치는 28조원으로 경쟁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 기업가치 91조원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SK온의 재무적 부담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SK온의 올해 상반기 말 별도 기준 순차입금은 7조345억원으로, 1년 전 1조7033억원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금융비용도 올 상반기 1699억원으로 덩달아 급증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이 같은 행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SK그룹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에 부담감을 느낄 수 있지만 현재 SK그룹이 진행 중인 활발한 자금 조달 행보를 고려하면 인내심을 가지고 도전해 볼 만하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SK그룹 입장에선 한국투자증권에 진 빚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증권사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지만 부담이 될 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가깝게는 SK온의 IPO를 염두에 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SK를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