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습니다. '공천개입 의혹'은 이제 용산을 정조준하고 있는데요. 국민 분노가 임계점을 향하고 있던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 육성'까지 등장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중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시선은 '한 대표의 입'으로 쏠립니다. 그의 앞에는 '국민 눈높이'와 '배신자 프레임'이란 2개의 선택지만 존재합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여론조사 정상화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운명 가를 '선택의 시간'
한 대표는 윤 대통령 육성 공개 직후 한동안 두문불출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통화 녹음에 대해 입장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도 내지 않고 있는데요. 지난달 31일에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답하지 않았습니다. 1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민주당의 추가 육성 공개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로써 한 대표의 고육지책 '특별감찰관 카드'는 완전히 동력을 잃었습니다. 여권 최대 리스크가 '김건희 여사'에서 '윤 대통령 부부'로 확장됐기 때문인데요. 애초에 실효성 없던 특감으로도, 윤 대통령이 장악하고 있는 검찰로도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명태균 씨에게 좋게 얘기한 것일 뿐, 공천 과정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곧바로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로 공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대화 자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민주당은 본격적인 여론전에 돌입했습니다. 탄핵안은 발의가 아니라 헌법재판소 인용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번 육성 공개가 민심에 얼마만큼 불을 붙일지'가 관건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현 상황을 '정치적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이날 소속 국회의원 전원, 원외 지역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비상 연석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는 오는 2일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 범국민대회'를 앞두고,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김건희 특검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다.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해명을 되풀이하며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급급한 모습입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받은 전화였고, 사적 대화일 뿐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당내에서도 공개적인 비판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재섭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국민의힘에서 아직 의혹에 공식 입장을 아직 내지 않았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언제부터 우리가 대통령의 실수나 과오에 위법성 여부를 다퉈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냐"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해야 하는 여당 상황도 굉장히 위태롭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국민 눈높이'와 '변화'를 내세우며 당선된 한동훈 대표가 나설 차례인데, 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는 4일 메시지를 내놓을 걸로 보입니다.
"용산 블랙홀…못 빠져나오면 공동 몰락"
한 대표의 탈출구는 사실상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배신자 프레임'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트라우마가 각인된 국민의힘으로선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요.
지난 2014년 박근혜 정권에선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이후 당정갈등이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들자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지지층을 등에 업은 박 전 대통령은 유승민 전 의원을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현재도 유 전 의원은 '배신자' 낙인이 찍혀 행동반경이 제약돼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 대표가 특검법에 찬성한다고 해서,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 거라는 데에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당내 주류인 친윤(윤석열)계가 프레임을 가동하긴 하겠지만, 당시와 현재의 상황은 다르다는 건데요. '탄핵 동참'과 '특검 동참'은 다를 뿐 아니라, 보수 지지층에도 '김건희 리스크'는 털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겁니다.
또 한 대표가 제3자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만큼, 배신자 프레임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선반영됐다는 분석도 존재합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세력 약한 한 대표가 당내에서 특검법을 관철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용산'이란 블랙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공동 몰락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도 "윤 대통령의 육성 공개가 한 대표에겐 위기이자 기회"라며 "오히려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에서 특검법을 앞세울 필요가 있다. '민주당 특검안으로는 당내 의원을 설득할 수 없다'는 논리로, 독소조항을 조율하면 보수층도 호응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