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정책금융기관의 기능 재편을 위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앞서 11개 정책금융기관의 시스템, 경영 전략과 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항목, 협업 기관 등에 대한 평가를 시행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요자 반응(C) 에 대한 평가 차례입니다.
이번 수요자 평가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13조 제2항'에 따라 1999년부터 매년 정책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PCSI)'로 대신합니다. 공공기관 고객만족도조사는 국민으로부터 정책금융기관의 업무 수행 효과와 신뢰도를 검증받는 주요 수단입니다.
하지만 현재 고객만족도조사 결과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 또는 기관 누리집에 단순 '등급'만 공시되고 있었습니다. 등급만으로는 정책금융기관의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국민이 기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무엇이 부족하다고 보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K-정책금융연구소는 지난달 2일부터 17일까지 국민 알 권리를 보장하고자 만들어진 '정보공개 청구' 제도를 통해 평가 대상으로 삼는 11개 정책금융기관 중 민간 기관인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을 제외한 10곳에 '2023년도 고객만족도조사 설문지 원자료(사본) 및 자체 분석 자료'를, 고객만족도조사를 주관하는 기획재정부에는 10개 기관의 설문지 원자료를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기관은 정책수요자인 국민 평가가 담긴 고객만족도조사 상세 내용 공개를 꺼렸습니다.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집행 및 정책 수행 과정에서 지적된 단점을 제대로 개선해 나가는지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는 셈입니다.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한 해 수백조 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집행하는 정책금융기관의 고객만족도조사가 '그들만의 조사'로 전락해 '성역'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제기됩니다.
10개 기관 중 한벤투만 '전체 공개'
(그래픽=뉴스토마토)
정보공개 청구 대상인 정책금융기관 10곳 가운데 설문지 원자료와 자체 분석 자료를 모두 제공한 곳은 한국벤처투자(한벤투)뿐이었습니다. 한벤투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이며 모태펀드를 운용 중인데, 지난해 고객만족도 점수가 90점 이상으로 나와 최고 등급인 'A'를 받았습니다. 이 밖에도 A등급을 받은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신용보증기금(신보)·기술보증기금(기보)은 자체 분석 자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은 설문지 원자료 제공에 응했습니다.
반면 한 단계 낮은 'B등급'에 속하는 한국산업은행(산은)의 경우, 어떠한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B등급인 중소기업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HF), A등급인 한국수출입은행은 일부 자료만 제공하거나 알리오 공시 수준 문구만 보냈음에도 '부분 공개'가 아닌 '공개'라고 알려왔습니다. 분량이나 내용 모두 미흡한 수준이므로 K-정책금융연구소는 이 점을 감안해 평가에 반영했습니다. 'D등급'으로 낙제점을 받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자체 분석 결과를 A4용지 한 장 분량 정도로 전해왔습니다.
가장 빠르게 대응한 곳은 기보와 무보였습니다. 기보는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이틀이 지난 10월 4일 고객만족도 평가에 대한 자체 분석 결과를 비교적 상세히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기보 전체 고객만족도 점수가 93.0점으로 전년 91.8점 대비 1.2점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본원적 욕구 충족 △서비스 효익성 △서비스 완결성 요소가 미흡하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법인 등 영업상 비밀 침해'를 이유로 설문지는 공개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기재부(조사 기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설계사), 한국능률협회컨설팅(주관사)에서 생산된 정보라며 해당 기관에 문의하라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무보는 10월 7일 "영업 비밀도 포함돼 있기에 질문이 포함된 설문지 원자료를 제공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항목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자체 정리한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10월 11일 무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무보 대상 고객만족도조사 설문 항목은 △전반적 만족(인지 만족·감정 만족) 40% △서비스 품질(상품 품질·전달 품질·환경 품질) 30% △불일치(기대·상대적 만족도) 20% △사회적 책임(정책 타당성·지속가능성·윤리성) 10%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무보의 지난해 고객만족도 종합 점수는 94.1점으로 전년(94.3점) 대비 0.2점 떨어졌으나, 준정부기관 평균인 89.9점보다는 4.2점 높습니다.
한벤투의 경우 '정원 100명 이상+연간 이용 고객 수 1000명 이하'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관에 속하는 까닭에 기재부가 아닌,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별도 조사를 실시합니다. 한벤투는 자체 분석 결과는 물론 설문지 원자료까지 제공했습니다. 모태펀드 운용과 관련해 묻는 설문지 원자료에는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이용한 시설, 장비 제품 등은 나의 이용 목적에 부합한다' 등 19개 객관식 질문과 '마지막으로 한국벤처투자에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1개 주관식 질문이 있었습니다. 객관식 질문은 0점(전혀 그렇지 않다)부터 10점(매우 그렇다)까지 고객이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답을 세분화해 제출할 수 있도록 했고, 개인·법인 등 고객 유형에 따라 응답 항목이 다른 문항도 존재했습니다.
한벤투의 지난해 전체 고객만족도 점수는 91.1점입니다. 전년(88.7점) 대비 2.4점 상승해 B에서 A로 등급도 한 단계 올랐습니다. 한벤투 측은 "고객만족도 수준 비율 분포도를 살펴보면 90점 이상이 67.6%로 나타났다"면서도 "70점 이하 분포가 9.6%로 만족 수준 하위 고객에 대한 고객 서비스(CS) 개선이 지속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산업은행, 모두 비공개…기재부 '나 몰라라'
정보공개 청구 현황 중 열람 상태 항목에서 '결'은 '결정통지 열람 완료', '공'은 '공개 자료 열람 완료'를 의미한다. 공운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청구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 10일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으며 청구인은 △공개 △비공개 △결정 가운데 하나로 결과를 받는다. 공공기관이 정보 공개를 결정한 때에는 결정 날로부터 10일 이내 공개해야 한다. 한국산업은행은 비공개를 알려왔다. 중소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공개 자료 없이 공시 결과에 관한 짤막한 문구만 보내놓고 공개라고 통지했다. 이들 세 기관의 열람 상태에는 다른 7개 기관과 달리 '공' 없이 '결'만 표시돼 있다.(사진=정보공개 청구 누리집 '나의 청구 현황' 갈무리)
반면 국책은행 3곳은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산은은 10개 기관 중 유일하게 두 개 항목 전부 '비공개'를 알려왔습니다. 정보공개법 제9조(비공개 대상 정보) 제1항 제7호에 의거해 경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중소기업은행(기은)은 이미 알리오에 공시돼 있는 항목별 고객만족 등급과 목표 달성 수준과 함께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기업고객 만족도가 개인고객 대비 긍정적"이라는 짤막한 문구만 보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 역시 "모든 업무 유형에서 A등급 달성(90점 이상)으로 수은에 대한 2023년 고객만족도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알리오 공시 내용을 반복하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상 3곳 국책은행 모두 기재부에 책임을 미루는 동시에 기존에 알려진 수준을 벗어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제는 기재부와 정책금융기관이 고객만족도조사 공개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보공개 청구 대상 10개 기관 중 7곳이 설문지 원자료 제공에 대해 '기재부'를 핑계 삼아 제공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설문지 원자료를 제공한 한벤투와 중진공,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모든 자료를 비공개한 산업은행을 뺀 나머지 기관 7곳은 "전부 고객만족도 피조사기관일 뿐, 생산·관리·보유 권한은 기재부에 있다"고 책임을 돌리며 공개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재부는 각 기관으로 책임을 돌렸습니다. 기재부 측은 "각 개별 공공기관 조사서는 실시 주체인 해당 기관이 보유하고 있다"며 "해당 자료에 대한 공개 요청은 개별 기관에 문의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습니다. 공운법에 의해 기재부 장관은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고객만족도조사를 통합 실시한 뒤 종합 결과만 공표하고 있으니 설문지 원자료는 실질적으로 조사에 임하는 각 공공기관에 문의하라는 얘기입니다.
"국민 알 권리 침해…기재부 책임 있는 태도 필요"
김유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공동대표가 11일 열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국회시민정치포럼 공동 주최, 알 권리가 위험하다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기재부와 정책금융기관이 고객만족도조사 상세 내용 공개를 두고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에 대해 수요자인 국민을 도외시하는 것이라 비판합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객만족도조사의 경우 기재부는 민간 여론 조사 기관인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주관을 맡기고, 실사 수행업체는 또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따로 뽑아 진행하기에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이라며 "공운법에 따라 국민에게 알 권리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선 각 기관 책임을 묻기 전에 전체 사업을 주관하는 기재부의 책임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민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고객만족도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설문 문항들일 텐데 기재부가 '정보 부존재'를 이유로 들었다는 것은 주관 부처로서 발주·입찰한 한국능률협회컨설팅으로부터 제대로 보고받지 않았거나 공개하고 싶지 않은 정보라 거짓말 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민 세금으로 민간 기관에 위탁돼 국민 대상으로 실시되는 조사임에도 영업상 막대한 지장을 미치는 정보라도 되는 듯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정보 공개하지 않고 단순 평가 결과만 공개하는 행태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지난달 29일 행정안전부는 국무회의에서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 시 정보공개 청구를 종결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의결 뒤 국회에 제출했다"며 "기재부 등 중앙부처들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행태는 대통령실 명단과 검찰 특수활동비 등 주요 정보 비공개 사례가 늘어나는 윤석열정부의 정보 은폐 기조와 연결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정책금융에도 공급자가 있으면 수요자도 있게 마련이다. 수요자가 공급자를 평가하는 것이 고객만족도조사이다. 공급자로서 정책금융기관 본령은 자금 공급이다. 자금 공급 목적은 시장(민간 금융)과의 관계에서 선도 육성, 안전판, 실패 보완 등이 있고 방법으로는 대출, 투자, 보증, 보험 등이 있으며 분야로는 중소 벤처 스타트업, 무역, 주택, 소상공인, 서민 등이 있다. 정책금융 수요자도 위에서 언급한 공급자와 똑같은 대응구조로 돼 있다. 수요자의 전반적 문제의식은 정책금융기관 직원의 시혜적인 태도와 업무지식이 일천하다는 지적이 많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 많고 많은 정책금융 자금들은 어디에 어떤 자금이 있는지? 접근은 어떻게 하는지? 널리 쉽게 잘 알도록 해줘야 하는데 아는 사람만 주구장창 누리고 있다는 것도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언론사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만족도 조사서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숨기고 싶은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서를 공개를 못한다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다. 하여, 한편으로는 국회의원들에게 법을 개선하는 캠페인과 더불어 또 한편으로는 영업 비밀 해당사항 여부도 법원 판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