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집권 1기 때부터 한반도 정세를 뒤흔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년 만에 47대 대통령으로 돌아옵니다. '블루월'(민주당 강세 지역)과 '러스트벨트'(쇠락 공업지역)에서도 대승을 거둔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보다 더 막강해진 권력을 손에 쥐게 됐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거래는 물론 이미 체결된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협상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까지 요구하는 '안보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큰데요. 한·미·일 3국 공조에 기반한 윤석열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더 강력해진 '트럼프'…곳곳서 비용 청구
7일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방향성을 종합하면 '바이든 지우기'(ABB·Anything But Biden)로 정리됩니다.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시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기반으로 한 '미국 우선주의'가 중심에 있는 겁니다.
거래 중심적 동맹관을 갖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0월 15일 "내가 백악관에 있었다면 한국은 연간 100억달러를 지출했을 것"이라며 한국을 '현금인출기'(머니머신)에 빗댔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도 방위비분담금을 기존보다 5~6배 높이 50억달러로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방위비협상은 조 바이든 행정부로 체결이 미뤄지면서 합리적 수준에서 결론이 났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윤석열정부는 트럼프 집권 2기를 대비한 듯 조기에 SMA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한·미가 협상을 마친 SMA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될 예정인데, 협정 적용 최초년도인 2026년 방위비 총액은 1조5192억원입니다. 한미는 이미 지난 4일 SMA 서명식을 개최했고, 우리 정부는 국회 비준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행정 협정'으로 충분히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집권 1기 당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기록을 돌아보면 트럼프 당선인은 일관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려는 전략을 가지고 임했다"며 "대승을 거두며 국정 장악력까지 높아졌기 때문에 미국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미국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려 들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바이든 행정부 기간에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항공모함 등의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를 대북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트럼프 집권 2기에서는 비용으로 청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미 핵억제 핵작전 지침' 등 확장억제 강화는 물론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등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는데, 2만 8000명 규모의 주한미군 축소나 철수가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통일연구원은 지난 6일 발표한 '트럼프의 귀환과 한반도' 보고서를 통해 "한·미 핵협의그룹(NCG) 하의 핵과 재래식 전력의 통합 운용, 미 전략자산의 전개, 핵 기반 시나리오를 반영한 연합 훈련의 정례화 등은 동맹의 경제적 부담과 연계된 항목"이라고 짚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환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미 4차 회담 '주목'…한국 '패싱' 가능성
트럼프 집권 2기가 야기할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당선인의 '직거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대국민담화·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과의 첫 통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의 핵문제보다 북한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시절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나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대선 유세 기간에도 트럼프 당선인은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그는 지난 7월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자리에서도 '핵무기'를 가진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면서 "(백악관으로)복귀하면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과 다시 대화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셈입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톱다운'(하향식) 방식이 유력합니다. 이때 트럼프 당선인은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핵동결과 핵군축, 미국 본토 겨냥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해서만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북한과 대화를 단절한 윤석열정부는 '패싱'될 수밖에 없습니다.
양무진 북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이미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해본 트럼프 당선인은 회담 의제로 북핵을 올리면 장애 요소가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며 "대북 압박 제재 위주인 윤석열정부에 대해서 북·미 양쪽이 한국을 패싱할 수 있으며,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대북 압박 수단으로 한·미·일 3국 협력을 활용했는데요. 이마저도 트럼프 2기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임 교수는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과 일본을 분리하는 계산법을 쓸 가능성이 높다"며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라는 투 트랙을 각각 활용하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 될 것이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8번째로 무역적자가 큰 국가인데요. 무역 불균형을 거론하며 관세 장벽을 세우려는 트럼프 당선인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틀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