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얼마 전 네이버웹툰의 모회사 웹툰엔터테인먼트의 3분기 실적이 나왔습니다.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서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죠. 특히 한국에서 웹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국 시장에서 유료 콘텐츠 매출, 월간 유료 이용자(MPU) 수치가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그 원인으로는 여러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공급되고 있어 새로운 독자를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 경쟁이 치열해 새로운 작품이 많이 쏟아지고 있어 꾸준히 인기를 끄는 웹툰이 나오기 힘든 환경이라는 점, 대부분의 웹툰이 무료라는 점, 불법 웹툰 사이트가 시장을 갉아먹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는 문제, 진입장벽이 낮아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점, 콘텐츠 시장의 대세가 숏폼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같은 지적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웹툰은 사실 만화가 진화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온 것이죠. 아시다시피 만화는 상상력이 특히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콘텐츠입니다. 우리는 현재 만화가 겪고 있는 위기를 두고, 만화에서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위기라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만화가 위기인 이유는 종이책이라는 매체의 운명에 영향 받는 것일 뿐, 웬만한 이야기를 이미 만화에서 다 다뤘기 때문은 아니니까요. 만약, 참신하고 재미있는 만화가 예전처럼 많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요.
웹툰 '정년이'를 원작으로 하는 tvN 드라마 '정년이'의 출연 배우들 (사진=뉴시스)
웹툰 시장 경쟁이 치열해 웹툰의 생명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지적은 어떤가요. 새로운 작품이 많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독자들의 관심도 아무래도 신작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긴 하겠죠. 하지만 웹툰은 옛날 종이 만화에 비하면 이에 대한 대안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적재산(IP)로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는 게 바로 웹툰입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늘고 있고, 이 드라마의 흥행이 다시 웹툰 원작의 수요를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상태인데요. 가령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정년이'가 요즘 인기인데,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2022년 완결된 동명의 원작 웹툰에도 다시금 독자들의 눈길이 머물고 있죠. 이 같은 사이클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론 기술의 발전 덕이기도 합니다. '지옥' 같은 웹툰을 떠올려 볼까요. 지옥 세계까지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편 이런 스토리는 예전같으면 감히 영상으로 담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겁니다. 수년 전만 해도 판타지를 다룬 영상물은 그래픽이 어설프다는 타박을 듣기 십상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말도 쑥 들어가버렸죠. 아무튼, 옛날 종이 만화에 비하면 웹툰이 생명 주기를 늘리기 훨씬 좋은 형편에 놓여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밖에 대부분의 웹툰이 무료라는 점은 시장 성장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기보다는 이제 막 발을 디딘 웹툰작가들을 위해 독자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장치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웹툰 초심자 격인 제가 웹툰에 이번주에만 쓴 비용이 3만원 가량 되는 것 같은데요. 작품이 괜찮으면 어김없이 유료더군요. 괜찮은 작품이란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초반부 몇 편 정도는 광고를 보며 여유 있게 간 보기를 하지만, 이야기가 한 번 탄력 받으면 독자 입장에선 '기다리면 무료'가 무용지물이 됩니다. 흐름이 끊길 새라 어느새 서둘러 결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각설하고, 좋은 작품, 흥미로운 작품엔 독자들은 언제나 지갑을 연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걸 반영해 플랫폼들도 가격 구조를 짜고 있는 것일 테고요.
이 같은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진입장벽이 낮아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의 경우도 사실 플랫폼이 더 분발해서 웹툰 품질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애를 써야 한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콘텐츠 시장의 대세가 숏폼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길이에 대한 선호도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또 개인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콘텐츠의 길이 문제는 바꿔 말하면 깊이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이야기에 대한 수요만큼이나 깊이 있는 이야기에 대한 수요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연극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에 대한 갈망을 정말이지 한결같이 품어왔으니까요.
올해 10월 열린 제27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부천대학교 영상&게임콘텐츠과 만화콘텐츠 동아리 학생들이 자신들이 직접 그린 웹툰과 일러스트, 게임원화, 캐리커처 등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부천대)
이처럼 한국 웹툰 시장의 위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들은 사실 따져보면 불법 웹툰 사이트 문제를 제외하고 결국 다 같은 이야기로 모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웹툰 작품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미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공급되고 있어 수요 증가에 한계가 있다는 말은 요즘 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콘텐츠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이제는 결국 사용자 혹은 수용자의 시간을 어느 매체가 얼마만큼 가져가느냐의 싸움입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같은 경쟁 상황에 놓인 셈이니, 한국 웹툰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너무 쉽게 비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웹툰 시장은 사실 코로나19 동안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중심으로 인기가 폭발했다가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조정되는 국면을 맞고 있는데요. 작가를 키워내는 과정에서 혹시 이 같은 장르 편중 현상을 은연 중에 부추기지는 않았는지, 플랫폼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해보입니다. 로맨스 판타지물 위주로 흘러가는 한국 웹툰 시장은 특히나 명확한 사실 하나를 일러주고 있기도 하죠. 아직은 다양한 이야기가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아,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하는 시선을 계속 강조했는데요. 그래도 이것 한 가지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불법 웹툰 사이트는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이요. 플랫폼의 자체 노력 외에 정부의 공조가 꼭 필요한 대목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