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유령처럼 떠돌던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선거법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유죄라고 판결한다 해도 100만원 전후의 벌금일 거로 생각한 상식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선거를 치르고 나면 후속으로 선거법 재판이 일상이 되다 보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낙선한 대통령 후보가 선거법으로 재판을 받고 유죄가 된 유일한 사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속해서 나쁜 쪽으로 대한민국 정치 ‘최초’라는 타이틀을 계속 추가하고 있습니다.
동창모임에서도 정치이야기를 하면, 필시 싸우게 된다고 많은 사람이 말립니다. 이번 판결로 여기저기에서 싸움이 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매우 비판적이고, 정치적 비전에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이번 선거법 판결 결과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정치적 판결’이라고 봅니다. 사법부는 최대한 정치적 사안에서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법부는 헌법 권한쟁의심판에서 보여주듯이 “대한민국 정치를 사법화하려는 시도에 법원은 단호히 반대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사건”으로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는 최소한의 사법부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관 개인으로 법리적 검토 끝에 유죄를 판단하더라고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유력한 대선후보에 대해 선거법으로 보복 판결을 한 겁니다.
이재명 대표도 잘못이 큽니다. 대선에서 실패하면 당연히 일선 정치현장에서 벗어나서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 선진국 정치에 대한 학습, 심신 회복을 위해 외유를 가는 것이 상식입니다. 곧바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고, 당대표 선거를 통해 야권 지도자로 다시 나서니까 사법적 위기를 방탄하는 무기로 활용한다는 정치적 공격을 자초했습니다. 결국 검찰 출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공격무기로 정치적 보복을 하는 끝없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죠. 선거과정에서 말한 불체포특권 포기 발언이나 국회에서 행한 연설 그리고 단식 투쟁 등이 비정상적인 정치행위로 인식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꽃이 선거입니다. 선거는 최대한 자유롭게 치러야 합니다. 말을 막는 법과 제도는 독재자를 낳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과 권력의 상호 견제에 있습니다. 이 중 사법부는 특히 중립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헌법과 법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작동해야 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법률적 판단을 넘어 패배한 정치인을 정치적 무대에서 제거하는 도구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많은 혐의로 4가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판결은 몰라도 선거법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을 보여주는 판결을 기대했습니다. 아쉽게도 선거 패배자를 정치적 보복의 대상으로 삼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법의 정치화는 단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훼손합니다. 정치적 논쟁이 법정으로 옮겨지는 순간,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고, 정치도 사회도 더욱 양극화됩니다.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갈등에서 한발 물러나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합니다. 이번 이재명 대표에 대한 판결은 단순히 개인의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는 문제가 아닙니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기를 제안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