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야야 또 (브리핑) 어디서한데? 장소 어디, 어디로 가는데...", "아놔 이동만 하다가 날 새겠네~", "뭐야 브리핑이 바뀌었어? ○동○○○호가 어디지...", "바쁘다 바빠 기사 쓸 시간도 없는 데 오늘도 이 건물 저 건물~"
윤 정부 출범 2년 반, 반환점을 돈 경제부처들이 저마다 앞다퉈 국정성과를 발표하는 통에 세종청사 출입기자들의 잰걸음이 유독 경보수준이다. 빡빡하게 짜여 있는 경제부처 스케줄을 보고 있으면 벌써부터 입에 단내가 올라온다.
개중 베테랑 기자로 불리는 몇몇 고참 선배들도 타매체 초년병에게까지 일정, 장소를 되물을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업무량과 빼곡한 일정에 시달리다보니 오죽하겠냐만 사실 기억력이 점점 노쇠해지는 건망증의 주범은 따로 있다. 일정 관리에 자신 있던 나도 그 귀동냥에 '앗! 그런 일정이 있었어 몇시? 어디지?'하는 걸 보면.
정부세종청사 4층 복도로 공직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정부청사의 각 경제부처들은 대통령 대국민 담화 이후 국정성과 알리기 등 브리핑 일정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오전에만 2곳의 정례 자리를 돌다 이제 막 한숨을 돌리려는데 모두들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뭐지? 뭐 또 있어?", "선배 A장관 브리핑한데요. 앞서 공지했는데 모르셨어요?", "아 맞다. 깜빡했다. 근데 왜 기자실에서 안 해", "참석자가 많아 장소 변경했대요"
출입기자들도 정부 치적 발표라는 걸 알지만 외면할 수 없는 본분이 있으니 일정을 쫓아다니기도 바쁘다. 말의 성찬만 가득 늘어놓는 일방적인 성과를 한 땀 한 땀 팩트 확인하다보면 하루하루 신경이 뾰족할 수밖에.
'아놔 ○동○○○호는 또 어디야'하며 투덜거리는 속내를 토하다 기사 한 줄이 문득 떠올랐다. 오늘 브리핑하는 A장관, 최근 국내 유력 일간지가 여권을 말을 빌려 '업무 역량이 기대에 못 미치는 부처' 중 한 곳으로 개각 가능성을 거론한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B경제지 기자의 첫 질문은 개각하면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모두 웅성웅성. (아직 그만 둔 것도 아닌데 아예 보내버리네...) A장관은 황당하다는 듯 멋쩍은 표정이다.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일축.
물어야할 방향이 틀렸다. 나를 비롯해 다른 기자들도 듣고 싶던 질문은 '냉혹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정도다. 사실 해당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장관보다 밑에 일선 실무진들의 노력과 고생을 직접 봐왔던 터라 이견이 없다. 정책 툴로는 한계가 있는 외생변수가 가장 컸던 부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야했다.
"여권을 말을 빌려 '업무 역량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 나온다. 장관의 부족인지, 실무진의 노력 부족인지, 외생변수 탓인지 섣불리 평가할 순 없지만, 실무진들 사이에서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도 그런 평가는 다소 아쉽다 한다. 해당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재물음.
목 주위가 급 붉어진 장관의 입에서는 '잘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진 못했다'는 게 요지다. 일선 현장을 두·세배 더 챙긴 실무진들 노력에 대한 치하, 부족 부분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뛰어난 리더십과 정무적 감각은 그런데서 나오는 것이거늘...)
"오늘 왜 이리 날이 섰어~", "살살해라~" 현장 선배들이 던지는 의도 없는 염려이지만 늘상 그럴 때마다 '나라 걱정하느라 마음이 편치 않다'는 웃픈 말로만 받아칠 뿐이다.
지난 70년 동안 성장 배경은 쏙 뺀 채, '한국 경제 슈퍼스타'라던 친윤계의 인물과 '경제위기·불안 상황 지나갔다'는 경제수장의 말을 회자하자니 엎친 데 덮친다. 국민들이 정부 업적을 모른다며 홍보 부족을 얘기하는 몰상식.
그래서일까. 각 경제부처 대변인실 직원들의 표정은 출입기자들과 같은 좀비상이다. 부처별로 빡빡하게 돌아가며 발표한 경제부처 국정성과도 아니나 다를까 치적만 꽉꽉 눌러 담은 자화자찬 일색.
정부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각 부처 대변인실과 기자들만 좀비상일까. 갈수록 세종 관가의 표정도 밝지 않다. 지탄받아야할 무념무상의 잉여 공무원들은 그렇다 쳐도 윗선의 무능을 홍보 부족으로 탓하니 공직자들은 모두 홍보맨이 돼야하나.
그래도 의식 있는 어느 한 공직자가 던진 한마디. "미리 예측이나 한 걸까요. 그래서 지난 대선 때 세종은 온통 블루였지요."
좀비 분장을 한 연기자들 모습.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