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정부가 반도체 생태계 강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 산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세제 혜택을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1조8000억원의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을 정부가 상당 부분 지원하고, 반도체 기업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도 상향한다는 방침입니다. 또 내년 14조원 이상의 반도체 관련 정책금융도 공급한다는 계획입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진 데다, 미국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정부가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일본, 미국에 비해 여전히 반도체 지원책이 부족할 뿐더러, 주요 소재·부품·장비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여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반도체 여러 분야 중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은 찾아보기 힘든데요. 정부가 수년째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외쳐왔지만,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빈약하다는 평가입니다. 한국 반도체를 맹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K 반도체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8조 송전선로 지중화 부담…정책금융 14조 지원
정부는 27일 경기 성남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건 2022년 이후 2년 만으로, 이날 발표된 방안은 지난 6월과 10월 내놓은 반도체 투자 지원 대책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우선 정부는 국회와 협의해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 시설에 대한 기업 부담을 대폭 줄이는 재정지원책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대표적으로 약 3조원에 달하는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 인프라 사업비를 지원합니다. 이 중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송전선로 지중화와 관련해 정부는 절반 이상 비용을 분담할 방침입니다. 이외에도 현재 500억 원으로 제한돼 있는 국가 첨단전략 산업 특화단지에 대한 정부 지원 한도를 상향 조정하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확대합니다. 정부는 국회와 협의해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R&D 시설투자를 포함하고, 반도체 기업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도 더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투자세액공제율에서 10% 추가 공제가 가능해집니다. 더불어 반도체 필수 소재에 대한 수입 관세율 인하도 추진합니다.
이와 함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제조 등 반도체 전 분야에 대해 내년 총 14조원 이상 정책금융을 공급합니다. 산업은행 반도체 저리대출 프로그램은 내년 4조2500억원 공급할 방침이며, 현재 3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반도체 생태계 펀드는 1200억원 규모 신규 펀드 조성을 통해 4200억원 규모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미·일 대비 부족한 지원책…빈약한 생태계 한계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반도체 생태계 지원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회와의 협력이 필수라는 점입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요. 기재부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을 위한 예산안·세법개정안을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국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일본, 미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반도체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일본은 지난 22일 반도체 산업에 약 10조엔(약 91조원) 규모를 지원하는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했는데요. 일본 정부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과 전력 반도체 양산 투자에 6조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민간대출에 대한 출자·보증 등 4조엔의 금융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미국 역시 지난 2022년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제정해 약 520억달러(약 69조원)를 투입하는 대규모 지원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에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도권 싸움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계에서는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군림해 왔지만, 일본·미국과 견주면 그 주변 생태계는 여전히 빈약하다는 평가를 내놓습니다. 가령 기술력을 갖춰도 주요 소재·부품·장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첫손에 꼽습니다. 때문에 반도체 산업 기반 자체가 약하다 보니, 주력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 외에 시스템 반도체와 같은 새로운 반도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입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반도체 지원 정책이 세제와 인프라 구축 지원에 방점을 뒀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말했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경기 성남시 한국반도체협회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